변화 택한 신화 ‘명성황후’ 역사는 계속된다

변화 택한 신화 ‘명성황후’ 역사는 계속된다

김소라 기자
김소라 기자
입력 2015-07-30 00:16
수정 2015-07-30 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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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 20년 기념 공연 가 보니

“나 혼자 고루하게 늙지만 않았으면 괜찮을 거야.” 28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만난 윤호진(67) 에이콤인터내셔널 대표의 얼굴에는 긴장과 호기가 교차했다. 윤 대표의 역작이자 한국 창작뮤지컬의 신화인 ‘명성황후’가 초연 20주년을 맞아 4년 만에 돌아오는 날이었다. 1995년 초연 당시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잡고 브로드웨이 무대까지 올랐던 명작이지만, 20년이 지난 지금의 관객들에게도 똑같은 울림을 줄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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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초연해 한국 뮤지컬 역사의 시작을 알렸던 ‘명성황후’. 20주년을 맞아 새롭게 돌아온 ‘명성황후’를 한국의 ‘캣츠’, ‘오페라의 유령’으로 만들겠다는 게 윤호진 대표의 포부다. 이번 20주년 기념공연에는 배우 김소현이 ‘외유내강’의 명성황후를 연기한다. 에이콤인터내셔널 제공
1995년 초연해 한국 뮤지컬 역사의 시작을 알렸던 ‘명성황후’. 20주년을 맞아 새롭게 돌아온 ‘명성황후’를 한국의 ‘캣츠’, ‘오페라의 유령’으로 만들겠다는 게 윤호진 대표의 포부다. 이번 20주년 기념공연에는 배우 김소현이 ‘외유내강’의 명성황후를 연기한다.
에이콤인터내셔널 제공
이 같은 시선을 잘 안다는 듯 “절반 이상 바뀌었다”는 게 윤 대표의 설명이다. 이날 베일을 벗은 ‘명성황후’는 리바이벌까지는 아니지만 대대적인 수정을 거친 흔적이 역력했다. 가림막을 활용한 무대 세트와 조명 등이 전부였던 아날로그 무대에는 디지털 영상이 가세했다. 명성황후가 고종과 혼인하는 ‘왕비 오시는 날’에서는 색색깔의 나비들이 날갯짓을 하고, 궁궐의 우거진 숲에는 초록빛 나뭇잎이 흩날렸다. 한 폭의 동양화처럼 드리워지던 영상은 때로는 휘몰아치는 파도(서구 열강의 문호개방 요구), 불타는 궁궐(임오군란) 등 역동적인 광경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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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초연해 한국 뮤지컬 역사의 시작을 알렸던 ‘명성황후’. 20주년을 맞아 새롭게 돌아온 ‘명성황후’를 한국의 ‘캣츠’, ‘오페라의 유령’으로 만들겠다는 게 윤호진 대표의 포부다. 이번 20주년 기념공연에는 배우 신영숙이 ‘카리스마’의 명성황후를 연기한다. 에이콤인터내셔널 제공
1995년 초연해 한국 뮤지컬 역사의 시작을 알렸던 ‘명성황후’. 20주년을 맞아 새롭게 돌아온 ‘명성황후’를 한국의 ‘캣츠’, ‘오페라의 유령’으로 만들겠다는 게 윤호진 대표의 포부다. 이번 20주년 기념공연에는 배우 신영숙이 ‘카리스마’의 명성황후를 연기한다.
에이콤인터내셔널 제공
2층 구조의 무대도 도입해 진화한 무대기술을 자랑했다. 2막에서 명성황후가 외국 대사들과 파티를 즐길 때 무대 바닥이 솟아오르고, 그 아래에서는 일본 공사 미우라가 황후의 시해를 모의한다. 은은한 푸른색 조명에 휘감겨 유유히 거니는 2층의 명성황후와 붉은색 조명 아래에 비장한 얼굴로 결의하는 1층의 미우라는 강렬한 색감의 대비를 통해 곧 휘몰아칠 비극을 예고한다.

경직됐던 캐릭터는 인간미를 입었다. 호위무사 홍계훈은 황후를 연모해 몸을 바친 남자 주인공으로 ‘격상’됐다. 임오군란을 피해 황후가 홍계훈의 도움으로 피신할 때, 이전 공연에서는 손을 잡고 가는 정도였지만 이번에는 황후가 홍계훈의 등에 업힌다. “몸과 몸이 맞닿는, 지극히 인간적인 순간을 만든 것”(윤호진 대표)이다. 우유부단한 인물로 묘사되던 고종은 황후를 사랑하며 조선의 미래를 고민하는 진중한 군주로 변모했다. 여기에 홍계훈의 애절한 아리아와 황후, 홍계훈, 고종의 삼중창이 새롭게 추가돼 관객들의 감정을 자극한다.

‘명성황후’가 20년의 시간을 거뜬히 뛰어넘기에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경사진 이중 회전무대를 활용한 장면 전환은 2015년에도 감탄이 절로 나왔지만 이를 받쳐줄 스토리의 흐름에는 빈틈이 보였다. 가요풍 넘버를 선호하는 관객들에게 오페라풍의 넘버는 다소 이질적으로 들려오기도 한다. 그러나 20여명의 남자 앙상블들이 우렁찬 기합과 함께 펼치는 ‘무과시험’, 방울 소리와 사물놀이 소리가 결합한 ‘수태굿’, 궁중 연회에서 펼쳐지는 여자 앙상블들의 ‘화관무’ 등은 한국 전통 춤과 무예가 서구 라이선스 뮤지컬 못지않은 장관을 연출해낼 수 있다는 것을 다시 증명해 보였다. 극의 대미를 장식하는 ‘백성이여 일어나라’는 여전히 ‘명불허전’이었다. 빈자리를 찾아볼 수 없었던 오페라극장에서 객석들은 전석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원종원 뮤지컬평론가는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에서는 역사 깊은 뮤지컬들이 수정과 진화를 거쳐 새롭게 공연되고 있다”면서 “‘명성황후’ 역시 20주년을 맞아 젊은 관객들과 소통하기 위해 변화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9월 10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6만~13만원. (02)2250-5940.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2015-07-3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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