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자 “연극은 제일 미련하고 우직한 사람이 하는 것”

박정자 “연극은 제일 미련하고 우직한 사람이 하는 것”

허백윤 기자
허백윤 기자
입력 2021-04-06 17:25
업데이트 2021-04-06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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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달 1일 개막하는 연극 ‘해롤드와 모드’
“‘롤모델’ 극 중 모드 나이 80세까지 목표”
“참 잘한 약속…지켜낼 수 있어 뿌듯” 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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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박정자가 연극 ‘해롤드와 모드’를 마지막으로 연기하게 된 소감을 밝히고 있다. 그는 2003년 초연 때부터 “여든이 될 때까지 이 작품을 매년 하고 싶다”고 말했고 이후 여섯 차례 이 작품으로 무대에 섰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배우 박정자가 연극 ‘해롤드와 모드’를 마지막으로 연기하게 된 소감을 밝히고 있다. 그는 2003년 초연 때부터 “여든이 될 때까지 이 작품을 매년 하고 싶다”고 말했고 이후 여섯 차례 이 작품으로 무대에 섰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내가 머리가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닌데, 그때 어떻게 이런 약속을 할 수 있었나 몰라. 참 잘한 것 같아요.”

우리 나이로 올해 여든, 기념으로 머리도 아주 짧게 잘랐다고 할 만큼 배우 박정자에게 ‘80’이란 숫자는 남달랐다. 2003년 연극 ‘19 그리고 80’에 처음 출연할 때 “여든 살까지 매년 이 작품을 공연하고 싶다”고 했던 바람을 지킬 수 있는 나이여서다. 다음달 1일 서울 강남구 KT&G 상상마당에서 개막하는 연극 ‘해롤드와 모드(19 그리고 80)’에서 박정자는 극 중 모드와 같은 나이로, 마지막 모드를 연기한다.

서울 중구의 한 문화공간에서 만난 박정자는 자신과 관객을 위한 약속을 지켜 내고야 만 소감을 밝히며 뿌듯한 듯 연방 미소를 지었다. “연극은 제일 미련하고 우직한, 별 재주 없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고 운을 뗀 것처럼 그는 ‘80세 모드’를 향해 차곡차곡 시간을 쌓았다.
배우 박정자(가운데)가 지난달 22일 연극 ‘해롤드와 모드’ 기자간담회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박씨 왼쪽은 박명성 신시컴퍼니 대표, 오른쪽은 연출을 맡은 윤석화. 신시컴퍼니 제공
배우 박정자(가운데)가 지난달 22일 연극 ‘해롤드와 모드’ 기자간담회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박씨 왼쪽은 박명성 신시컴퍼니 대표, 오른쪽은 연출을 맡은 윤석화.
신시컴퍼니 제공
매년 모드로 살고 싶다는 바람은 이뤄지지 못했지만, 지금까지 다섯 번의 연극(2003, 2004, 2006, 2012, 2015)과 한 번의 뮤지컬(2008)로 꾸준히 관객들과 만났다. 매번 연출과 상대 배우들이 달라졌지만 모드 역의 박정자만은 그대로였다. “그때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참 좋은 작품이고 관객들도 많이 좋아해 주셔서 ‘극 중 나이가 될 때까지는 만나야겠다’ 마음에 두고 있던 걸 지킨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약속을 향해 나아갈 만큼 모드라는 인물이 마음에 들었다. 죽지 못해 안달인 19세 소년 해롤드와 만나 사랑을 노래하는 80세 할머니 모드를 ‘롤모델’이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무공해처럼 순수하고 지혜가 넘치며 유머까지 있는, 아주 건강하고 귀여운 할머니”라면서 “이런 역할을 계속할 수 있다는 건 대단한 행운”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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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해롤드와 모드’ 무대에 오르는 배우 박정자.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연극 ‘해롤드와 모드’ 무대에 오르는 배우 박정자.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게다가 그도 작품 속 모드와 많이 닮았다. “처음 만났을 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그런 이유로 보였다. “딱히 애쓰지 않았어요. 운동도 안 하고 무척 게을러요. 물론 내가 게으르다고 하면 윤석화가 그래. ‘선생님이 어떻게 게을러?’라고.” 다만 1962년 연극 ‘페드라’로 데뷔한 이후 단 한 해도 쉬지 않고 무대에 섰다는 것이 애쓰며 살아온 지난 시간을 설명한다. “이 바쁜 세상을 막 바쁘게 살거나 호흡에 맞춰서 허덕이진 않는 편인 것 같아요. 한마디로 심플하죠. 그래야 어떤 작품이든지 들어올 여지가 있다고 생각해. 내가 너무 시달리거나 세상 사는 것에 분주하고 그러면 어떤 작품이나 배역이 나한테 들어오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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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박정자.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배우 박정자.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박정자는 그가 말한 연극처럼 ‘우직하고 묵묵히’ 연기하며 살아왔다. 여든이 되어서도 여전히 ‘실수하지 않게 해 달라’ 기도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오를 만큼 무대는 그의 모든 것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은 남편도, 자식도 아닌 배우를 한 것”이라면서 “부모님이 지어 준 이름을 연극을 통해 세상에 드러냈고, 이렇게 평범한 얼굴과 이름으로 여기까지 온 것은 오로지 배우였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름이 평범하다고 얘기하다 “어휴, 박정자가 뭐야” 하고 웃던 그가 덧붙였다. “그래도 내 이름 속 ‘바를 정(正)’ 자를 정말 좋아하고 그 글자를 붙들고 어긋남 없이 살려고 했어요. 물론 실수도 하고 실망도 주고 그랬겠지만, 하여튼 붙들고 살아야 할 기둥은 있어야 하니까.”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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