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사람에게서 받는 상처… 갑자기 코로나보다 무서웠다

어느 날 사람에게서 받는 상처… 갑자기 코로나보다 무서웠다

허백윤 기자
허백윤 기자
입력 2021-06-08 17:32
업데이트 2021-06-09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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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산의 연극 ‘어느 날 갑자기…!’

작년 8월 극단 내 코로나 확진 경험
자신들 겪은 이야기 90분으로 압축
단원들이 느낀 공포·관계 단절 담아
“몸은 치유됐으나 마음은 회복 안 돼
객석의 박수에 스스로가 치유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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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어느 날 갑자기…!’
연극 ‘어느 날 갑자기…!’
“이곳은 코로나19 확진자들이 입소하는 생활치료센터입니다. 각자 적힌 방으로 이동하시고 별도 공지가 있기 전까지 문 밖에 나오시면 안 됩니다.” 서울 대학로 예술공간 혜화에 들어서면 방 번호가 적힌 표와 손 세정제, 커피가 담긴 보급품을 준다. 이어 방호복 차림 안내원이 각자 자리를 찾으라고 건조하게 말한다. A동, B동으로 나눠진 객석을 향하는 길이 바짝 긴장된다.

연극 ‘어느 날 갑자기…!’는 그렇게 관객들을 지난해 8월로 데려간다. 8·15 광복절 집회 이후 수도권에서 급격하게 확진자가 늘어났던 때, 대학로에서 공연을 앞둔 한 극단에서 41명 중 18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공연계 코로나 확산의 근원지가 될 뻔한 상황을 코앞에서 겪은 그 극단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직접 꺼내기로 용기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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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환 극단 산 대표
윤정환 극단 산 대표
최근 만난 윤정환 극단 산 대표는 “누구나 겪을 수 있지만 아무도 알지 못하는 시간이라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생활치료센터를 거쳐 증상이 악화돼 병원까지 입원했던 그는 극 중 극단 산의 배우 ‘김성진’을 주인공으로 자신과 동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코로나19 양성이라는 전화를 받는 순간부터 구급차를 타고 생활치료센터로 이송되는 과정, 낯선 이들과의 불편한 동거, 병원으로 옮겨져 겪은 일, 그리고 다시 세상 속으로 나와 숨을 들이키는 모든 시간들을 90분에 압축했다. 동생의 확진 소식에 형은 알코올 대신 양주로 집 안 곳곳을 소독한다. 마구 달리는 앰뷸런스 속에서 ‘교통사고로 먼저 죽겠다’며 멀미를 하던 기억, 의료진은 물론 경찰도 들어올 수 없는 공간에서 사람에게 느끼는 공포까지. 시설 속 인물 설정을 제외하고 모든 대사와 상황은 윤 대표와 단원들이 보고 들은 그대로다.

단원들을 설득해 작품을 내놓은 이유는 또 있다. “코로나19는 앞으로 어떻게든 치료가 될 텐데, 멀어진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는 어떻게 회복을 해야 하고, 그 거리 때문에 생긴 상처들은 어떻게 치유해야 할까요. 몸은 치유됐지만 우리 마음에 또 다른 병이 남아 있거든요.”

극단 단원들의 확진 소식이 알려지자 성진의 전화에 불이 난다. “니들이 왔다 갔다고 소문 나서 우리 가게가 장사가 안 된다. 우짜면 좋냐.” “나 지금 촬영해야 하는데 형 만난 거 말 안 하면 안 되나?” 사람들은 환자보다 각자의 상황을 걱정했다. 4인 병실에서 중증 환자가 들어오자 나머지 경증 환자들이 “우리가 더 나빠지는 것 아니냐”며 난리법석을 떠는 것도 ‘웃픈’ 장면이다.

단원들도 스스로 회복의 시간을 갖기로 한 프로젝트이지만 배우와 스태프 20명 가운데 확진자는 6명만 참여했다. 힘들었던 기억이 떠오르며 어려움을 호소한 이도 있고, 심리치료를 받는 이도 있다. 이미 연극계를 떠난 이도 있다. “같은 위험 속에 약간의 행운이 엇갈린 것이라 생각하면 좀더 진심으로 위로하고 걱정해 주지 않을까, 그러면 우리 사이의 거리가 좀더 좁혀지지 않을까요.” 윤 대표는 객석의 박수가 서로에게 조금이나마 치유가 되길 바랐다. 공연은 13일까지.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2021-06-09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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