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눈으로 쓴 ‘65세 동시’

아이 눈으로 쓴 ‘65세 동시’

입력 2010-02-13 00:00
수정 2010-0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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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수 시집 ‘염소 똥은 똥그랗다’

“시랑은 어렵사리 통하고, 동시랑은 도통 통하지 않는다. 아무튼, 그런데, 시와 놀 때가 재미있었다면, 동시랑 놀 때는 훨씬 더 재미있었다.”

일곱 권의 시집을 내며 등단 25년 동안 시와 ‘놀아온’ 중견 시인 문인수가 첫 번째 동시집을 냈다. ‘염소 똥은 똥그랗다’(문학동네 펴냄)에는 동심으로 돌아간 65살 시인의 즐거운 말놀이 기록 60여편이 실려 있다.

어린이의 시선으로 돌아간 시인의 상상력은 더 자유로워졌다. 10살 키 작은 초등학생으로 돌아간 시인에게, 학교 앞 육교는 거대한 공룡이 되고 운동장은 넓고 푸른 숲으로 변한다. 그 사이에서 기린은 비쭉 머리를 내밀고, 뿔을 닮은 국기 게양대에서는 빨간 새가 난다.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관찰하는 시인은, 마음까지도 아이처럼 여려져서는 일상의 흔한 일에도 울고 웃는다. 그런 여린 시선으로 돌아가자 시인은 그동안 어른의 눈으로는 발견할 수 없었던 주변 풍경에서 새로운 의미들을 길러낼 수 있게 된다.

이런 시선은 ‘소눈은 검고 커다랗다 / 싸우니까, 더 커다랗다 // 와- 와- 떠드는 사람들 응원 소리에 뿔을 맞대고 있지만 / 소의 두 눈은 점점 더 커다랗게 껌뻑, 껌뻑, 슬프다 서로 / 미안, 미안하다고 한다’(‘싸우는 소’)처럼, 그동안 시인이 꾸준히 보여준 대상에 대한 진중한 사유를 동시에서도 놓치지 않게 한다.

작품들은 나이를 잊은 만큼 발랄하다. 시늉말이 많이 들어가지 않는 대신, 음성의 반복 등의 언어유희로 읽는 재미를 살렸다. 표제작에서부터 ‘말뚝에 대고 그려 내는 똥그란 밥상, / 풀 뜯다 말고 또 먼 산 보는 똥그란 눈, / 똥그랗게 지는 해,’ 같이 ‘ㄸ’의 반복을 통해 리듬감을 확보한다. 시인은 초등학교 4학년 때 ‘둥둥둥 흰 구름 어디로 가나 / 김삿갓 할아버지의 옷자락인가’라는 동시로 선생님 칭찬을 받은 이후 시인의 꿈을 키웠다. 동시집에는 이 ‘흰 구름’에 새 옷을 입힌 작품 ‘흰 구름은 뭉게뭉게 근심만 부푼다’도 실렸다. 10살 문인수와 65살 문인수를 비교해 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삽화작가 수봉이의 단정하고 투명한 그림이 잘 어울린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2010-02-1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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