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을 범하다】 이정원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최근 대중문화계에서 ‘고전 뒤집어 보기’가 한창이다. ‘장화홍련’이나 ‘방자전’ 같은 영화는 모두가 알고 있는 고전에 전체적인 분위기를 덧씌우고 줄거리를 현대식으로 해석한 것이다. 단선적이던 고전 속 주인공의 모습에 현대적인 배경이 어우러지면서 주인공은 복잡다단한 캐릭터로 진화했다.“옛 소설에 매혹당했다.”라는 이정원 경기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의 ‘전을 범하다’(웅진지식하우스 펴냄)에서는 13편의 고전을 파고들며 그 자체에서 복잡다단함을 찾아낸다. 저자는 ‘권선징악’이나 ‘충효사상’이라는 한마디로 고전의 주제를 압축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가 읽은 13편의 고전은 당시의 시대상을 넘어 지금까지 이어지는 사회의 보편적 진실이 반영된 결과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은 너무 어린 시절 읽어서 하나의 명제처럼 되어버린 고전을 새로운 시각으로 분석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심청전’에서 심청이 공양미 삼백석에 몸을 팔며 승상댁에 수양딸로 팔려 가겠다고 하는 대목에서 저자는 심 봉사의 이기심을 언급한다. 그 순간에도 자신과 심청의 부녀관계가 단절되는 것보다 ‘(공양미 삼백석을 시주하는) 부처님과의 약속을 지키게 됐다’고 안도하는 심 봉사의 모습이 기이하다는 것이다. 결국 심 봉사의 눈 멂이 실제로 눈이 멀었다는 의미를 뛰어넘어 맹목적인 이기심이라고 해석하는 대목은 현대 정신과 의사들이 즐겨하는 심리 분석이나 원형 분석을 떠올리게 한다.
‘장화홍련전’의 악독한 계모를 놓고 저자는 가부장제적인 사회 속에서 불안하기만 한 후처의 지위를 생각해 볼 것을 권한다. 이렇게 읽어야 할 근거로 저자는 조선시대 형벌에 대해 기록한 정약용의 ‘흠흠신서’를 내세운다. 흠흠신서에 기록된 영조 시절 ‘백필랑·필애의 자살 사건’은 필랑·필애 자매가 자살을 유도한 계모를 때려 죽였다는 기록이다. 후에 계모는 인자했고, 자매가 독살스러웠던 것으로 진상이 조사됐다. 당대의 기록을 함께 찾아보는 읽기 방식은 현대적인 시선에서 고전을 이해하려는 ‘실용적인 접근’과는 차원이 다른 재미를 준다.
사족으로 이 책에서는 군데군데 인용한 원문을 통해 또 다른 묘미를 찾을 수 있다. 심청전만 해도 군데군데 삽입된 ‘완판 심청전’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온 국민이 내용을 알고 있으되 어린이용으로 편집된 문구로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책에 삽입된 원전을 읽다 보면, 주인공과 주변 사람의 성정과 관계가 다시 눈에 들어온다. 원전을 집요하게 파고들며 우리 고전을 허투루 보지 않고 깊이 읽어 낸 작가의 여유와 통찰력에도 새삼 눈길이 간다. 가격 1만 2000원.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2010-11-06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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