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돈 드릴로 지음/송은주 옮김/창비/140쪽/1만 4000원
2022년 디지털 붕괴된 뉴욕 배경 소설이웃들과 안면 트지만 공허한 소통뿐
코로나로 뉴욕 봉쇄 직전에 작품 완성
네트워크 속 단절된 현대인들에 경종

뉴욕 게티/AFP 연합뉴스

2019년 7월 13일 오후 6시 50분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를 포함한 미드타운과 어퍼 웨스트사이드가 암흑 속에 빠졌다. 디지털로 연결된 세상에서 대정전이 일어난다면 사람들은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하게 될까. 돈 드릴로의 소설 ‘침묵’은 디지털 연결고리가 끊긴 상황을 배경으로 유형의 의미를 찾아간다.
뉴욕 게티/AFP 연합뉴스
뉴욕 게티/AFP 연합뉴스
‘침묵’은 2022년 디지털 네트워크가 붕괴된 도시, 뉴욕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토머스 핀천, 코맥 매카시 등과 함께 미국 포스트모던 문학을 대표하는 거장으로 꼽히며 해마다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돈 드릴로의 최신작이다. 책은 출간 몇 달 전부터 팬데믹이 야기한 고립과 단절에 대한 선견지명을 담아냈다는 평으로 화제가 됐다. 드릴로는 2018년 “맨해튼의 텅 빈 거리에 대한 비전”으로 시작한 이 소설을 코로나19로 뉴욕이 봉쇄에 들어가기 몇 주 전에 완성했다고 밝혔다.

ⓒJoyce Ravid, 창비 제공

돈 드릴로
ⓒJoyce Ravid, 창비 제공
ⓒJoyce Ravid, 창비 제공


디지털 네트워크는 전 세계 사람들을 유례없이 가깝게 연결해 놓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무도 누구의 말에도 귀 기울이지 않는 역설적 단절을 초래했다. 그러나 ‘침묵’은 이러한 혼란에 대비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넌지시 말한다. 늘 메모를 멈추지 않는 테사의 행동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비행기 사고에 맞닥뜨린 테사는 큰 소리로 이렇게 외친다. “우리가 아직 살아 있다고 스스로에게 계속 말해주는 거 잊지 말아야 해.”(50쪽)
맨해튼의 친구 부부 집에 와서도 마찬가지다. “가장 단순한 육체적인 것들을 챙겨야 해. 만지고, 느끼고, 물어뜯고, 씹고. 몸은 그 나름의 마음을 가지고 있어.”(129쪽) 테사는 우리에게 무형의 세계에서 유형의 것들을 늘 돌보고 살펴야 한다는 진실을 전한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2020-10-3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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