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포천 ‘비둘기낭’

경기 포천 ‘비둘기낭’

입력 2010-04-08 00:00
업데이트 2010-04-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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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만년전 용암이 빚은 신선의 놀이터

타임머신을 탑니다. 시간은 30만년 전쯤으로 돌려 둡니다. 장소는 경기 포천시 영북면 대회산리로 맞춥니다. 공교롭게도 화산지대 아래쪽에 내렸네요. 잘 익은 홍시 속살 같은 용암이 지표를 따라 흐릅니다. 휴전선 위, 북한땅 평강군 오리산에서 분출된 용암입니다. 지각도 덩달아 요동칩니다. 거대한 용암의 흐름이 한탄강과 임진강을 휩쓸고 지나갑니다. 그 중 한 지류가 대회산리 쪽으로 방향을 잡습니다. 용암은 지표를 따라 높낮이를 달리하며 흐릅니다. 때론 폭포수처럼 떨어지기도 합니다. 흐르던 용암이 식으며 굳기 시작했고, 식은 용암이 깨지면서 육각형 결정이 생깁니다. 제주도에서 익히 본 주상절리(柱狀節理)입니다. 세월이 흘러 용암은 물에게 길을 내줬고, 다양한 식물과의 동거도 허락했습니다. 물길은 오랜 세월 세공사의 손길처럼 현무암을 조탁했고, 숲은 사람들의 시선을 가려 접근을 막았습니다. 오늘날 ‘비둘기낭’이라 불리는 포천의 주상절리 폭포와 현무암 협곡은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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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간한 지도에는 표기 조차 되지 않는 경기 포천의 숨은 명소 비둘기낭. 30만년전 화산활동으로 생겨났다.
어지간한 지도에는 표기 조차 되지 않는 경기 포천의 숨은 명소 비둘기낭. 30만년전 화산활동으로 생겨났다.


●커다란 폭포와 주상절리의 비경

간간이 들려오는 군부대의 포사격 훈련 소리로 인해 전방 지역에 한층 더 가까워졌음을 실감하게 된다. 경기 북부를 여행할 때면 어김없이 듣는 소리. 긴장감과 여유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는 느낌이다.

비둘기낭이라. 이름이 독특하다. 오래되고 길이가 긴 폭포일수록 신선이나 선녀·용·봉황 등 실존하지 않는 이상 세계와 연관되거나, 금·은 등 값지고 귀한 것들을 주로 이름에 쓰지 않던가. 그에 견줘 보면 적잖이 이례적이다.

비둘기낭 마을 주민들에게 들은 이름의 유래는 다소 실망스럽다. 입이라도 맞춘 듯, 하나같이 “왜정 때 비둘기들이 많이 서식했기 때문”이란다. 그럼 ‘낭’은? 낭떠러지의 줄임말이다. 풀어 쓰면 ‘비둘기들이 집단 서식한 낭떠러지’쯤 되겠다. 비둘기낭까지는 논 가장자리 길을 따라간다. 오른쪽은 모내기를 앞둔 논, 왼쪽은 울창한 숲이다. 그 사이로 폭 1m 남짓한 개울이 흐른다. 초봄 갈수기에 말라깽이 칠십할머니 젖가슴만도 못하게 바짝 말라 있다. 주민들은 도무지 뭔가 있을 것 같지 않은 개울 너머에 기이한 경치가 숨어 있다고 했다.

100여m 진흙탕길을 걸어 내려가면 왼쪽에서 물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곧 들이닥치는 비둘기낭의 자태. 평지라고 생각했던 논둑길 아래로 커다란 폭포와 주상절리 지대가 펼쳐진다. 가슴이 두방망이칠 만큼 빼어난 풍경이다.

●한탄강 댐으로 2012년엔 수몰될 수도

현무암 절벽을 에둘러 돌아 내려가면 의외로 거대한 비둘기낭의 규모에 입이 ‘쩍’ 벌어진다. 10m 남짓한 폭포를 사이에 두고 왼쪽은 주름잡힌 현무암이 병풍처럼 둘러쳐졌고, 오른쪽은 천장이 무너져 동굴이 됐다. 마른 폭포 아래 연못은 진초록으로 빛나고, 이끼 낀 검은 현무암 협곡 사이로는 맑은 물이 흐른다. 물줄기의 끝자락은 한탄강에 닿는다. 협곡에서 바라보는 한탄강의 모습도 여간 경이롭지 않다.

눈을 돌려 동굴 위를 보시라. 육각형 분필처럼 잘라진 주상절리들로 빼곡하다.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이다. 천장에서는 또 하나의 폭포가 쉬임 없이 바닥을 두들기고 있다. 깊은 산도, 너른 바다도 아닌 평범한 논둑길 아래에서 벌어지고 있는 풍경이다. 영험한 기운마저 감도는 동굴 한편엔 벌써 발빠른 무속인들이 다녀간 치성(致誠)의 흔적이 보인다. 연인들이 영원한 사랑을 기원하며 적어 놓은 글귀도 눈에 띈다. 이처럼 기이하고 아름다운 세계에 낙서로 분탕질을 해놓은 그들의 욕심이 원망스럽다.

한 걸음 뒤로 나가 전체를 보면 날개를 편 흑비둘기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빼곡히 들어찬 주상절리들은 꼭 깃털처럼 생겼다. 이만한 풍경이라면 ‘인디애나 존스’류의 모험영화 촬영지로도 모자람이 없겠다. 실제 국내 TV드라마의 촬영장소로 쓰이기도 했다. ‘선덕여왕’에서는 천명공주(박예진)가 독화살을 맞고 죽었고, ‘추노’에서는 송태하(오지호)가 추노꾼에 부상당한 김혜원(이다해)을 치료했다. 죽음과 고통 등 주로 삶의 어두운 부분이 그려진 공간인 셈.

비둘기낭 자신의 미래도 그리 밝지 않다. 포천시청 관계자에 따르면 2012년 완공되는 한탄강댐 조성계획 단계부터 비둘기낭은 홍수지에 포함됐다. 이 관계자는 “서울 한강 둔치처럼 장마철에 많은 비가 올 때나 어쩌다 물에 잠기게 될 것”이라고 안심시켰다. 믿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 하지만 인간의 손에 맡겨진 자연이 온전하게 보전된 경우가 과연 있었나.

●솟아오른 화강암 바위 짚단 쌓은듯

비둘기낭 외에도 한탄강과 주변 지류 인근엔 물과 용암이 빚어낸 주상절리 등 수직단애의 풍광들이 많다. 용암이 굳어 만들어진 현무암은 다른 암석에 견줘 강도가 원체 약한 탓에 물에 침식되는 부분은 절리면을 따라 덩어리째 떨어져 나간다. 특히 수직절리 현상이 있는 곳은 거의 직각에 가까운 절벽이 만들어진다. 현무암이 대부분인 한탄강과 임진강 유역에 면도날 같은 직벽들이 늘어서게 된 이유다.

관인면 사정리의 화적연은 그 중 앞줄에 선다. 수직의 주상절리대 사이를 흐르는 강물 한가운데 솟아 오른 화강암 바위. 볏짚을 쌓아 올린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 덕에 ‘볏가리소’라는 예쁜 우리말 이름도 얻었다. 포천의 옛이름을 딴 ‘영평 8경’ 중 1경으로,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는 물론 한시 150여편에 등장했다.

비둘기낭에 견줘 규모는 작지만, 구라이 현무암협곡의 큰 가마소도 익히 알려진 명소다. 구라이는 굴과 바위를 뜻하는 우리말 ‘아위’가 합쳐진 이름. 창수면 운산리에 있다. 30~40m의 깎아지른 듯한 수직단애가 압권인 부소천 주상절리(영북면 운천리), 멍우리 주상절리 적벽(관인면 중리) 등도 둘러볼 만하다.

글·사진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31)

→가는 길 : 서울에서 자가용을 타고 갈 경우 43번국도(포천, 운천방향)→운천제2교차로 좌회전(대회산리방향)→78번지방도→5㎞ 직진→보령농장 방향 좌회전→비둘기낭마을 입간판 보고 우회전→비둘기낭. 53번 버스가 포천시청에서 비둘기낭까지 하루 5회 왕복운행 한다. 1500원. 버스 종점 앞 절골상회 뒤편 ‘비둘기낭마을 1길’ 표지판 방향으로 200m가량 걸으면 작은 콘크리트 다리를 만난다. 다리 건너기 전 오른쪽으로 난 소로를 따라 100m 정도 아래로 내려가면 상수원보호구역 팻말이 나온다. 팻말 오른쪽 아래가 비둘기낭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진흙길인 데다 이끼가 끼어있어 몹시 미끄러우니 조심해야 한다. 비둘기낭 마을 홈페이지(dovenang.invil.org) 참조. 포천시청 문화관광과 538-2068.

→맛집 : 포천 하면 단연 이동갈비. 이동 지역 80여곳의 갈비집 가운데 직접 갈비를 손질해서 쓰는 곳은 15곳 남짓 된다고 한다. 동원갈비(534-9922)는 직접 고기를 손질하고 양념을 만들어서 내오는 집 가운데 하나. 1인분 2만 2000원.

→주변 볼거리 : 신북면 포천아트밸리(www.artvalley.or.kr)는 폐채석장을 활용해 예술 창작공간으로 새단장한 곳. 깎아지른 화강암 절벽 사이에 조성된 에메랄드빛 호수, 천주호와 지상 3층 규모의 전시관 등 볼거리가 많다. 어른 2000원, 어린이 500원. 538-3484. 영북면 산정리 평강식물원은 아시아 최대 규모의 고산식물 전시장인 암석원, 자연형 계류를 복원한 이끼원 등 12개 테마가든으로 구성된 종합식물원이다. 한국 자생식물과 전 세계의 식물 7000여종이 전시돼 있다. 4000~6000원. 531-7751.
2010-04-08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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