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막에서 국밥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운 일단의 보부상들이 ‘끙~’ 소리를 내며 ‘바지게’(다리가 없는 지게)를 지고 일어섭니다. 바지게 위에는 경북 울진 바닷가 마을에서 사들인 건어물이며 소금, 생선, 젓갈 등 내륙에 내다 팔 물산들로 가득합니다. 그들이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향하는 곳은 봉화(춘양), 영주, 안동 장 등입니다. 요즘에야 7번, 36번 국도가 사통팔달로 이어주지만 어디 예전에도 그랬으려고요. 갯마을에서 내륙으로 가기 위해서는 당연히 산을 넘어야 했습니다. 내륙에서 피륙, 비단, 곡물 등을 사서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였지요. 그 시절 보부상들이 발품 팔았던 그 길, 그들의 밭은 숨결 켜켜이 쌓인 그 길이 ‘십이령길’입니다. 현지인들은 ‘십이령 바지게길’이라고도 부르지요. 산림청과 울진군이 그 길을 복원해 ‘금강소나무 숲길’이란 이름으로 지난 7월 일반에 공개했습니다. 예전엔 화적 떼가 들끓던 그 길에 이젠 ‘살아 있는 화석’ 산양과 사슴, 고라니 등이 살고 있지요. 쭉쭉 뻗은 금강송들은 이들에게 버팀목이 되어 줍니다. 선인들의 숨결 오롯한 옛길을 거닐며 차분하게 가을을 맞는 건 어떨까요.
글 사진 울진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오래 된 숲길 금강송은 십이령길을 걷는 내내 탐방객들의 길동무가 돼 준다. 오래전에도 묵묵히 보부상들을 굽어보고 있던 금강송과 무언의 대화를 나눠 보시길.
닫기이미지 확대 보기
오래 된 숲길
금강송은 십이령길을 걷는 내내 탐방객들의 길동무가 돼 준다. 오래전에도 묵묵히 보부상들을 굽어보고 있던 금강송과 무언의 대화를 나눠 보시길.
●옛길이 주는 감동의 시간들
옛길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길. 바위와 나무를 돌아 어제와 오늘을 이어 주는 옛길은 오래된 시간의 크기만큼 호젓한 시간을 내어 준다. 예전엔 십이령길과 함께 고초령길(매화장)과 구주령길(평해장) 등이 울진에서 내륙의 대처로 나가는 통로 역할을 했다. 그중 대표적인 길이 십이령길이다. 바릿재, 샛재, 너삼밭재(저진치) 등 정겨운 이름의 고개를 넘는데, 울진 관내에 7령, 봉화 관내에 5령이 속해 있다.
이상을(57) 산림청 울진국유림관리소 경영토목계장에 따르면 총길이는 약 150리(약 60㎞)쯤 된다. 하지만 이는 구전에 따른 기록일 뿐 정확한 측량에 근거한 거리는 아니다. 이번에 공개된 십이령길은 그중 울진군 관내 약 21㎞ 구간을 복원한 것.
그런데 공식 이름을 보부상 옛길이나 십이령길이 아닌 금강소나무숲길로 정한 까닭은 뭘까. 이 계장은 “총 4개 구간 70㎞에 금강소나무숲길이 조성되는데, 보부상길은 그중 1구간 전체 13.5㎞를 말하는 것”이라며 “내년으로 예상하고 있는 2구간 16.7㎞ 일부에도 보부상 옛길이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보부상들은 흥부장(현 부구리)이나 죽변장, 울진장에서 미역 등 갯것들을 사 봉화 춘양장 등에 내다 판 뒤 다시 내륙에서 비단, 곡물 등을 가져와 해안 장터에 팔았다. 그들은 대개 북면 두천리 주막거리에서 하루를 묵고, 이튿날 아침 일찍 바릿재를 올랐다. 바릿재란 소에다 물건을 바리바리 싣고 다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두천리 주차장에서 맑은 내를 훌쩍 뛰어넘으면 내성행상불망비(乃城行商不忘碑)와 만난다. 보부상들이 접장(接長) 정한조 등의 은공을 기리기 위해 세운 철비(鐵碑)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입구이자 십이령길의 출발지다.
다소 된비알의 바릿재를 숨가쁘게 넘어가면 옛 장평마을이다. 여기서부터는 임도를 따른다. 임도 초입에는 제법 큰 키의 엄나무가 탐방객들을 굽어보고 있다. 나이는 350살가량. 이윤권(54) 숲해설가는 “엄나무는 약재 등 쓰임새가 많아 대부분 다 자라기 전에 잘려지곤 하는데, 이 녀석은 못생긴 탓인지 여태 살아남았다.”며 웃었다.
전설의 흔적 서들골 아래 ‘선녀 엉덩이탕’ 풍경. 물줄기가 암벽을 파 두 개의 작은 소를 만들었다. 이곳에서 다리쉼을 했던 보부상들은 필경 농염한 상상을 하며 희희덕거렸을 터다.
닫기이미지 확대 보기
전설의 흔적
서들골 아래 ‘선녀 엉덩이탕’ 풍경. 물줄기가 암벽을 파 두 개의 작은 소를 만들었다. 이곳에서 다리쉼을 했던 보부상들은 필경 농염한 상상을 하며 희희덕거렸을 터다.
●못난 소나무가 선산 지킨다더라
임도를 따라 발길을 재촉하면 곧 서들골. 시싯골과 창골 등에서 내려온 계곡물이 합류하는 곳이다. 겨울철이면 곧잘 산양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서들골에 들면 옛길은 접고 잠시 쉬어갈 일이다. 빼어난 계곡이 보이지 않게 이어져 있기 때문. 계곡을 따라 10분쯤 내려가면 ‘선녀탕’이다. 하지만 현지인들은 ‘선녀 엉덩이탕’이라 즐겨 부른다. 계곡물이 암벽을 파 두 개의 둥그런 소를 만들었는데, 그 모양이 여인네의 엉덩이와 닮았다 해서 이처럼 해학적인 이름이 붙었다. 필경 이곳에서 다리쉼을 했을 보부상들도 이 모습을 보며 저마다 입에 궐련을 문 채 희희덕거렸을 게다.
닫기이미지 확대 보기
‘선녀 엉덩이탕’ 있는 곳에 남근석이 빠지랴. 여기서 다시 10분쯤 내려가면 길게 뻗은 바위와 소가 어우러져 있다. 당연히 이름도 ‘남근탕’이다.
서들골에서 한 시간 반쯤 걸으면 찬물내기다. 계곡물이 매우 차갑다는 뜻으로, 1구간의 중간 쉼터다. 찬물내기에서 남매처럼 다정하게 선 금강송 두 그루를 지나 산길로 접어들면 샛재(鳥嶺·595m). 경북 문경의 ‘새재’와 똑같은 이름이다. 결국 영남 사람들이 한양으로 가기 위해서는 하나도 버거운 ‘새재’를 두 개나 넘어야 했던 셈이다.
서어나무가 무거운 그늘을 만들고 있는 샛재에 서면 ‘조령성황사’란 편액이 내걸린 낡은 건물과 마주한다. 보부상들이 상단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지은 성황당으로,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장중한 분위기로 주변을 압도한다.
샛재 주변엔 그야말로 ‘기골이 장대한’ 금강송들이 가득하다. 저마다 둥치에 노란 페인트칠을 하고 있는데, 문화재 중수 시 베기 위한 표식이다. 이윤권 숲해설가에 따르면 4137번까지 표시돼 있다. 조령성황사 바로 옆, 어른팔로 두 아름쯤 되는 금강송이 1번. 원래 남대문 복원공사 때 베어질 뻔했으나, 둥치 위가 약간 굽어 규격에 미달된 덕에 살아남았다. ‘못난 소나무 선산 지킨다’더니 딱 그 모양새다.
샛재에서 대광천까지는 평탄한 내리막 코스. 철 따라 들꽃들이 지천으로 피고 진다. 샛재에서 10여분쯤 내려오면, 희미하게 발자국 흔적이 남아 있는 돌계단과 만난다. 이 숲해설가는 “보부상들이 오랜 기간 짚신발로 밟아서 생겨난 흔적”이라고 전했다. 너삼밭재 입구 어름에서는 보부상들이 밥을 지어 먹은 흔적도 찾아볼 수 있다.
넉넉한 바다 SBS 드라마 ‘폭풍속으로’ 촬영지이기도 했던 죽변항 뒤 갯마을 풍경. 예전 보부상들은 이 마을 저 마을을 돌며 미역 등 갯것들을 사들였을 게다.
닫기이미지 확대 보기
넉넉한 바다
SBS 드라마 ‘폭풍속으로’ 촬영지이기도 했던 죽변항 뒤 갯마을 풍경. 예전 보부상들은 이 마을 저 마을을 돌며 미역 등 갯것들을 사들였을 게다.
●제철 송이 맛보고 오세요
‘제8회 울진 금강송 송이축제’가 새달 1~3일 울진친환경엑스포공원 일대에서 열린다. 울진군은 축제를 통해 전국 최대 송이 생산지의 면모를 과시할 계획이다.
축제의 백미는 송이 채취 체험이다. 현장에서 선착순으로 접수한다. 하루 두 차례, 오전 10시와 오후 2시 북면 구수곡자연휴양림 일대를 걸으며 송이를 딴다. 체험비 1만원을 내면 송이 1개씩 채취할 수 있다. 산림욕을 즐기며 송이를 따는 맛이 각별하다. 두 시간쯤 걸린다. 송이채취 체험 및 투어 참가자는 참가비의 절반을 울진사랑상품권(5000원)으로 되돌려 받고, 축제기간 동안 주요 관광지와 온천 입장료를 30~50% 할인받을 수 있다. 울진군산림조합 (054)782-2249.
■여행수첩(지역번호 054)
▲가는 길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중앙고속도로 풍기, 또는 영주 나들목으로 나와 36번 국도를 타고 곧장 간다. 영동고속도로→동해고속도로→7번 국도→울진 순으로 가는 방법도 있다. 두천1리에 차를 뒀을 경우 십이령길이 끝나는 소광2리 금강송 펜션 앞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되돌아오면 된다. 오후 4시20분 소광리를 출발해 5시30분 두천리에 도착한다. 두천리까지는 7000원, 울진터미널 앞(5시)까지는 5000원을 받는다. 시내버스는 울진버스터미널 앞에서 오전 6시25분, 오후 1시20분·4시15분·6시에 각각 출발한다. 2000원.
▲예약 십이령길은 1일 1회 예약제로 운영된다. 탐방 인원도 하루 80명을 넘지 않는다. 국내 최대 금강송 군락지인 데다 산양(천연기념물 제217호) 서식지를 통과하기 때문이다. 출발은 오전 9시. 산행 내내 숲해설가와 가이드가 동행한다. 숲길에 들어서면 무전기나 휴대전화가 되지 않는다. 참가비는 없다. 울진숲길(www.uljintrail.or.kr, 781-7118), 산림청 울진국유림관리소(780-3940~3).
▲잘 곳 두천리와 소광리 주민들이 민박을 운영한다. 두천리 1인 1만원. 식사 5000원. 이튿날 도시락(5000원)도 싸준다. 소광리 6만~12만원. 울진숲길을 통해 예약할 수 있다. 인근 구수곡 자연휴양림(783-2241)이나 통고산 자연휴양림(782-9007), 덕구온천관광호텔(782-0677) 등에서 자고 이튿날 두천리에서 합류해도 된다.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통해 총 13조원 규모의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지급하기로 하자 이를 둘러싸고 소셜미디어(SNS) 등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경기에 활기가 돌 것을 기대하는 의견이 있는 반면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소비쿠폰 거부운동’을 주장하는 이미지가 확산되기도 했다. ‘민생회복 소비쿠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