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초 이야기 | 제비꽃]제비꽃의 참 억울한 또 다른 이름, 오랑캐꽃

[야생초 이야기 | 제비꽃]제비꽃의 참 억울한 또 다른 이름, 오랑캐꽃

입력 2010-04-25 00:00
수정 2010-04-25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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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야생초를 꼽아 보라 하면 아마 다섯 손가락 안에 제비꽃이 들지 않을까? 풀잎들이 파릇파릇 돋아날 무렵, 제비가 돌아온다는 삼월 삼짇날 즈음이면 제비꽃이 핀다. 어떤 이는 제비 모양을 갖추고 있어서 제비꽃이라 한다지만 아무리 제비꽃에 제비를 겹쳐보아도 그림이 나오지 않는다. 아마 제비가 돌아올 무렵이면 우리나라 어디서고 작지만 화사하게 피어나 봄을 알려주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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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꽃
제비꽃


장난감이 흔하지 않던 옛 시절에 제비꽃은 어린 아이들의 장난감으로도 훌륭한 몫을 해내었다. 제비꽃에게는 안 되었지만 어린 시절 제비꽃을 따서 두 송이를 엇걸어 ‘꽃씨름’을 하기도 했고, 꽃반지를 만들기도 했다. 그래서 제비꽃을 반지꽃이라고도 한다. 꽃이 지고 씨앗이 맺히면 씨를 따서 ‘쌀밥놀이’도 했다. 씨앗을 상대에게 보여주고 쌀밥인지 보리밥인지 알아맞히도록 하여 씨앗을 손톱 끝으로 까서 덜 여문 하얀색(쌀밥)인지 잘 익은 갈색(보리밥)인지를 확인하는 놀이다. 물론 지금은 사라진 풍경이다.

그런가 하면 제비꽃은 어린 순은 나물로 먹기도 하고 유방염 등 부인병과 중풍, 이질, 설사, 진통, 인후염 등의 치료에 약재로 사용하며 발육촉진제, 간장기능촉진제로 쓰인다고 한다. 요즈음은 식용꽃으로 밥에 넣어 꽃밥을 해먹기도 한다. 화전을 부치는 데도 쓰여 하얀 떡 위에 놓인 꽃잎은 먹기에도 아까우리 만큼 곱다. 이쯤 되면 우리 민족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야생초라는 게 입증된 셈이다.

그런 제비꽃이 참 억울한 또 다른 이름을 갖고 있다. 이름하여 ‘오랑캐꽃’이다.

- 긴 세월을 오랑캐와의 싸흠에 살았다는 우리의 머언 조상들이 너를 불러 ‘오랑캐꽃’이라 했으니 어찌 보면 너의 뒤ㅅ모양이 머리태를 드리인 오랑캐의 뒤ㅅ머리와도 같은 까닭이라 젼한다 -

아낙도 우두머리도 돌볼 새 없이 갔단다

도래샘도 띳집도 버리고 강 건너로 쫓겨 갔단다

고려 장군님 무지무지 처드러와

오랑캐는 가랑잎처럼 굴러 갔단다

구름이 모혀 골짝 골짝을 구름이 흘러


백 년이 몇 백 년이 뒤를 니어 흘러갔나

너는 오랑캐의 피 한 방울 받지 않었것만

오랑캐꽃

너는 돌가마도 털메투리도 몰으는 오랑캐꽃

두 팔로 해ㅅ빛을 막아 줄께

울어보렴 목놓아 울어나 보렴 오랑캐꽃


이용악 <오랑캐꽃>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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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깔제비꽃
고깔제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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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제비꽃
남산제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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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제비꽃
노랑제비꽃
이용악의 이 <오랑캐꽃>이 바로 제비꽃이다. 시 본문에 앞서 해설 부분이 바로 제비꽃의 생김새를 말해주고 있다. 모양과 색깔과 크기는 다양해도 제비꽃의 가장 큰 특징은 꽃 뒷부분에 돌출되어 있는 이 꿀샘에 있다. 오랑캐의 변발머리처럼 튀어나와 있는 것이다.

“오랑캐의 피 한 방울 받지 않었것만” 오랑캐의 머리 모양과 닮았기 때문에 오랑캐꽃이라 불리는 것인데, 우리 민족이 일제의 탄압으로 인해 그 옛날 고려 장군에게 쫓기던 오랑캐와 같다는 현실 인식이 이 시의 주요 내용을 이루고 있다. 일제에 의해 오랑캐 취급을 받으며 나라도 잃고 떠돌던 유랑민 신세, 조선 민중의 억울함과 비통함을 암시하는 것이 ‘오랑캐꽃’인 것이다. “울 밑에 봉선화”와 같은 이미지라고나 할까.

양지 쪽을 따라 담 밑에도 장독대에도 피고, 시멘트 블록 틈에도 무덤가에도 산비탈이나 높은 산에도 피어난다. 콩알만한 콩제비꽃에서 큼직한 삼색제비꽃, 하얀 남색제비꽃, 젖 빛깔의 흰젖제비꽃, 높은 산에서만 주로 자라는 노랑제비꽃, 지리산 화엄사 근방에서 자생한다 해서 화엄제비꽃 등등 그 잎의 모양도 가지가지고 꽃의 다양한 크기나 색깔만큼이나 그 이름 또한 여러 가지이다. 이는 모두 제비꽃의 강한 번식력과 생명력에서 비롯된 것인데 제비꽃만큼 강한 번식력과 생명력을 가진 야생초도 드물지 않을까 한다.

제비꽃은 4월과 5월에 핀다. 그리하여 암술에 수술의 꽃밥이 실려와 씨앗을(개방화) 맺는다. 그러나 꽃철이 지나 꽃이 피지 않아도 꽃이 맺히는 듯하다가 꽃은 피지 않고 곧바로 씨앗이 맺혀(폐쇄화) 여문다. 참 신기한 번식 방법이다. 다른 개체와 꽃가루받이를 하여 다양한 유전자를 받아들여 종족을 이어가는가 하면 한편으론 자기 스스로 꽃가루받이를 하여 순수혈통을 이어가기도 하는 것이다. 꽃을 피우지 않고도 씨앗을 맺다니, 놀랍지 않은가? 그런 식물이 더러 있다고 한다. 고마리도 새콩도 개화와 함께 폐쇄화로 씨앗을 맺기도 한다. 개방화는 열매를 맺을 확률이 그리 높지 않은 반면 폐쇄화는 매우 높다고 한다.

이 씨앗은 익으면 터져서 멀리 흩어지는데 재미있는 사실은 이 씨앗을 널리 퍼뜨리는 데에 개미가 도와준다는 것이다. 이 제비꽃의 씨앗에는 개미가 좋아하는 ‘얼라이오좀’이라는 단맛이 나는 물질이 묻어 있는데 개미가 이것을 먹기 위하여 씨앗을 물고 갔다가 여기저기 씨앗을 옮겨놓는다고 한다. 얼레지나 깽깽이풀도 그렇듯이 개미가 도와준다. 공생관계에 있는 것이다. 제비꽃은 왕성한 번식력과 함께 다른 동물의 도움까지 겹쳐 그 종족을 번창하게 만드는 데 가장 으뜸일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싶다.

봄이다. 시인 안도현의 시에서처럼 “제비꽃을 몰라도 봄은 오고 제비꽃을 알아도 봄은 간다.” 그러나 다 같은 봄은 아니다. 강인한 생명력에 대한 깨달음은 도서관에서 강의실에서 책이나 유명한 철학자에게서만 배우는 것은 아니다. “허리를 낮출 줄 아는 사람”이라면 이 작은 제비꽃 한 포기에서도 그 깨달음은 오는 것이다. 겸허하게 허리를 낮추고 주위를 둘러보자. 60여 종이나 되는 제비꽃들이 생명의 환희를 노래할 것이다.

글_ 복효근 시인·사진_ 조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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