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의와 감사를 그대에게

경의와 감사를 그대에게

입력 2010-06-13 00:00
수정 2010-06-13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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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 유난히 걸스카우트에 들고 싶었습니다. 매년 봄 신입단원 신청 때마다 엄마에게 졸라댔는데, 좀처럼 허락해주지 않아 매번 실망해서 시무룩해지곤 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초등학교 시절의 추억거리가 몇 개 더 생기는 정도였겠지만, 당시에는 황갈색 유니폼을 입고 다소 우쭐대며 회합에 참석하러 달려가는 친구들 때문에 상당한 상실감을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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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 시대에 진입하기 직전에 태어난 제가 초등학교, 당시에는 국민학교에 다니던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만 해도, 한 반의 학생수가 50명이 넘는 콩나물시루 교실이었습니다. 당연히 지금보다 환경이나 제반조건은 열악했지만, 오히려 이런저런 ‘재미’는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인터넷이나 휴대전화 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여전히 대부분 손으로 하는 구시대의 놀이들이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아마도 이런저런 활동에 참가할 수 있는 스카우트의 매력이 한층 컸을 것입니다. 실제로 인기도 높아서 신청한다고 다 가입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기초 체력장 같은 몇 가지 간단한 입단 시험도 거쳐야 했습니다. 주변에 초등학생이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IT문명의 홍수 속에서 자라난 요즘 초등학생들에게도 스카우트가 여전히 인기일지는 의문입니다.

노먼 록웰의 작품은 꽤 여러 번 소개를 드렸지요. 20세기 미국인들의 소소한 일상들을 정감있게 담아낸 그의 그림들이 조급한 마음에 빙긋 웃을 수 있는 여유를 돌려주기 때문입니다.

46명의 젊은 목숨이 스러져간 천안함 침몰 사건 때문에 MIU(Man In Uniform, 제복을 입은 대원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실 꽤 오래 전부터 제복 입은 남자들을 좋아했습니다. 꼭 군인이 아니더라도 파일럿, 경찰관, 소방관 등등. 왜 제복 입은 남자들이 좋을까, 곰곰이 생각해본 적이 있는데 그 제복이 상징하는 ‘목숨을 건 프로 정신’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제복 입는 직업들은 가장 기본적인 생명과 관련된 일이 많습니다. 그 일을 하는 당사자도 목숨을 걸어야 하고, 또 다른 사람의 목숨이 달려 있기도 한 그런 일들. 그래서 제복을 보는 순간, 불안했던 마음이 왠지 편안해지면서 안도와 신뢰가 솟아나기 때문은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미국 유학시절, 구일일 테러 때 모두가 한시라도 빨리 탈출하려는 그 생지옥으로 달려가, 살아나오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무거운 장비를 지고 무너져가는 계단을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던 소방관들이 문득 생각납니다.

록웰은 1925년부터 76년까지, 무려 50년이 넘도록 매년 미국 보이스카우트연맹에서 펴내는 달력에 삽화를 실었습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스카우트에서 성인에게 수여하는 최고의 영예인 은 물소 메달을 받기도 했지요. 1941년 달력에 실린 <A Scout is Helpful(스카우트는 다른 사람을 돕습니다)>은 스카우트는 물론, 모든 엠아이유의 정신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재해 현장에서 부상당한 어린 소녀를 안고 나오는 한 보이스카우트 단원을 그린 이 그림을 보면서,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임무를 다하고 있는 그들에게 경의와 감사를 표합니다.

박누리_ 칸딘스키가 ‘영혼과 가장 가까운 색’이라고 말한 파란색을 사랑하고, 도시 전체가 하나의 미술관 같다는 파리와 로마를 잊지 못하며, 비 오는 날 바흐를 들으며 글 쓰는 것을 좋아합니다. 미술 관련 서적들을 우리말로 옮겼으며, 그림 에세이 <꿈을 꾸다가 베아트리체를 만나다>를 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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