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상 꿈나무 3인방-
오는 8월, 2011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대구에서 열린다. 우샤인 볼트, 이신 바예바 등 세계적인 육상 선수들이 총출동해 인간의 한계에 도전한다. 그보다 앞서 뜨거운 열전이 펼쳐지는 곳이 있다. 비록 관중은 관계자와 학부모들뿐이지만, 그 열기만큼은 세계선수권대회에 뒤지지 않는다. 바로 5월에 열리는 전국소년체전이다. 미래의 육상 스타를 꿈꾸며 따스한 봄 햇살 아래서 부지런히 뛰고 있는 육상 꿈나무들을 만나보았다.

멀리뛰기 꿈나무 김대성(목포 하당중 3)
최고 기록 6m 53, 한국신기록까지 1m 67
“짝 짝 짝.” 친구들의 박수에 맞춰 큰 보폭으로 달리다 한 발로 구름판을 딛고 힘차게 날아오른다. 공중을 걸어가듯 두 발을 앞뒤로 젓다가 모래를 사방으로 튀기며 착지. “와!” 하는 친구들의 함성이 쏟아진다. 멀리뛰기 꿈나무인 김대성 군이 꼽는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너무 좋아요. 날아가는 것 같고.” 구름판을 딛고 날아올라 착지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2초 남짓. 하지만 그 기분은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단다.
대성 군이 가장 닮고 싶은 사람은 광저우아시안게임 멀리뛰기 금메달리스트인 김덕현 선수다. “점프력이 아주 뛰어나고요, 조주(구름판을 딛기 전까지 달리는 것)가 정말 매력적이에요.” 대성 군은 김 선수를 딱 한 번 본 적이 있다. 대성 군이 훈련하는 유달경기장으로 국가대표팀이 훈련하러 왔을 때다. 짝사랑하는 사람 보듯 말 한마디 못 걸고 혼자 들떠서 지켜보기만 했단다.
다음날 훈련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밤 9~10시면 잠자리에 드는 대성 군은 10시 넘어 하는 TV 프로그램은 아무것도 모른다. 운동에 전념하기 위해 사귀자는 여자 친구의 제안도 거절했단다. 중학교 1학년 때 허리 부상으로 한 달간 훈련을 못 한 적이 있었다. 그때도 대성 군은 혼자 머릿속으로 훈련을 했다. “누워서 눈을 감고 내가 운동하는 걸 머릿속으로 계속 그려봤어요. 조주를 하고 구름판을 딛고 점프해 착지를 하고…. 그러면 복귀해서도 비슷하게 할 수 있어요.”
이렇게 기특한 아들이 경기하는 걸 정작 어머니는 한 번도 보신 적이 없다. “식당에서 일하시거든요. 아빠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빠가 돌아가셨어요.” 애초에 육상을 시작하게 된 것도 엄마의 설득 때문이었다. 대성 군에게 멀리뛰기란 고생한 엄마에게 효도할 수 있는 길이다. “나중에 국가대표 되고 성공하면 꼭 엄마한테 좋은 집 사드리고 싶어요.” 올해 목표는 지난해의 부진을 씻고 전국소년체전에서 우승하는 것. 200m 달리기와 멀리뛰기 종목에서 2관왕을 꿈꾸는 대성 군의 봄은 벌써부터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더 빨리 - 내 앞길을 막을 장애물은 없어요
100m 허들 꿈나무 박소영(광양 백운중 3)
최고기록 15초 1(비공식), 한국신기록까지 2초 1
“으헤헤.” 배실배실 잘 웃고 무슨 질문이든 바로바로 답이 나온다. 그야말로 ‘쿨’하다. 육상을 시작하게 된 계기도 단순하다. “친한 언니 따라 육상부에 놀러 갔다가요.” 시작은 높이뛰기로 했다. “이유는 몰라요. 높이뛰기 할 발목이었대요.”(웃음) 그러다 중1 때 종목을 달리기로 바꾸었다. 또래 육상부보다 머리 하나는 작았던 키가 중학교에 들어와 갑자기 자랐고, 몸의 중심이 높아지며 점프에 대한 두려움도 커졌던 것이 원인이었다.
코치는 허들을 권했다. 하지만 속도를 내 달리면서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는 것도 소영 양에게는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100m 허들 경기에서 넘어야 하는 허들은 열 대. 도약과 전력질주를 반복한다. 이때 허들과 허들 사이를 세 걸음에 달리는 것이 중요하다. “처음엔 3보로 뛰지도 못했어요. 어느 날 선생님이 허들을 다 깔아놓고 초를 잡을 테니 무조건 3보로 뛰라는 거예요. 그때 처음으로 됐어요.” 어렵게 첫 단추를 꿰고 나니 다음은 일사천리였다. 허들을 시작한 지 1년도 안 되어 소영 양은 제12회 꿈나무선수선발육상경기대회에서 1등을 했다.
한창 외모에 신경 쓰고 멋 부릴 나이지만, 운동을 위해 포기해야 하는 것도 많다. “선크림을 바르는데 만날 (얼굴이) 타니까 속상해요. 다리도 완전 굵어졌어요. 특히 종아리.” 운동을 시작한 뒤로 짧은 커트머리만 해오다 이번에 처음 머리를 길러보았단다. 고생하는 딸이 안쓰러운 엄마는 운동을 그만두었으면 하지만 소영 양의 고집에 지고 만다. “운동을 하다 보면 조금씩 조금씩 기록이 깨지잖아요. 그게 너무 좋아요.” 나와 싸워 얻은 0.01초가 너무도 소중하고 기쁘단다.
“저는 별로 욕심도 없고 꿈도 없었어요. 그런데 운동하면서 처음으로 꿈을 갖게 됐어요.” 운동선수로는 참으로 드물게 “승부욕이 없는 게 가장 큰 단점”이라는 소영 양. 하지만 그는 승부욕보다 더 소중한 걸 이미 가지고 있다. 공자님도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아는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을 당할 수 없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당할 수 없다고.
@더 높이 - 소심 소년, 하늘을 날다
높이뛰기 꿈나무 이광수(공주 봉황중 3)
최고기록 1m 92, 한국신기록까지 0.42m
낯도 많이 가리고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싫어한다는 이광수 군은 사진 촬영 내내 쑥스러워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사람 많은 경기장에서 어떻게 시합을 하나 걱정될 정도다. 그런데 키 186cm의 이 ‘소심 소년’이 유일하게 대담해질 때가 있으니 바로 시합을 나갈 때다. 도약을 하고 철퍼덕 떨어지고 나면 그제야 다리가 풀리며 사람들의 존재가 눈에 들어온단다. “저도 신기해요.” 그래서 대부분 연습 때보다 시합 기록이 더 좋다.
달린다. 높이뛰기 바 앞에서 한쪽 발로 힘차게 날아오른다. 공중에서 몸을 활처럼 휘어 바를 넘는다. 도약해서 떨어질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0.2초. “의식이 없다고 해야 하나. 그 순간은 기억이 없어요.” 그러면 어떻게 바를 넘는 순간 미세하게 몸을 조정해 걸리지 않게 하는 걸까? “의식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연습에 의해 되는 것 같아요.”
높이뛰기는 상대 선수의 기록에 따라 수시로 전략이 달라진다. “육체적으로는 별로 안 힘들지 몰라도 머리가 참 피곤한 운동이에요.” 광수 군은 작년 전국소년체전을 잊을 수 없다. 예선 성적이 좋지 않아 본선에서 순서가 앞쪽에 배치되었는데, 1차 시기에 1m 92를 넘었다. “다른 선수들이 넘는 걸 기다리는데, 그땐 정말 10분이 두 시간처럼 길었어요.” 결과는 우승이었다.
열심히 해서 자신이 ‘높이뛰기’를 인기 종목으로 만들겠다는 이 욕심 많은 소년의 역할 모델은 재미있게도 높이뛰기 선수가 아니라 왕년의 씨름 스타 이만기 교수다. “씨름 열심히 해서 교수가 되신 분이잖아요. 저도 운동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도 열심히 해서 후배를 양성하는 교수가 되고 싶어요.” 인터뷰 때문에 수학 수업에 빠진 광수 군이 남긴 한마디도 이랬다. “수학은 한 시간 빠지면 따라가기 어려운데.”
이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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