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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늦어도 회사는 다 안다… AI로 통제받는 배송 노동자

조금만 늦어도 회사는 다 안다… AI로 통제받는 배송 노동자

김주연 기자
김주연 기자
입력 2020-10-30 01:40
업데이트 2020-10-30 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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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주문대로 매장 물건 담는 ‘피커’
일 속도 떨어지면 PDA에 빨간불 경고
배달 기사도 1시간 단위로 배송량 할당

쿠팡에선 ‘시간당 생산량’ 갈수록 높여
속도 느린 직원은 사내방송으로 호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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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평균 2만 5000보 걸으며 온라인 주문 상품 분리서울의 한 홈플러스 매장에서 온라인 주문대로 물건을 담는 피커(picker) 노동자들이 대형 트롤리(카트)와 상품이 담긴 상자를 정리하고 있다. 마트노조에 따르면 피커 1명은 매장 안에서 하루 2만 5000보를 걷는다. 물건을 담는 속도에 따라 파란색, 초록색, 노란색, 빨간색 알림 표시가 뜨기 때문에 시간에 쫓기며 일을 해야 한다. 마트산업노동조합 제공
하루 평균 2만 5000보 걸으며 온라인 주문 상품 분리서울의 한 홈플러스 매장에서 온라인 주문대로 물건을 담는 피커(picker) 노동자들이 대형 트롤리(카트)와 상품이 담긴 상자를 정리하고 있다. 마트노조에 따르면 피커 1명은 매장 안에서 하루 2만 5000보를 걷는다. 물건을 담는 속도에 따라 파란색, 초록색, 노란색, 빨간색 알림 표시가 뜨기 때문에 시간에 쫓기며 일을 해야 한다.
마트산업노동조합 제공
손가락으로 스마트폰 화면 몇 번만 누르면 식료품과 맛집 음식이 현관문 앞에 도착하는 세상이다. 이런 편리함 뒤에는 번개처럼 빠르고 기계처럼 정확하게 움직여야 하는 플랫폼 노동자의 고단함이 서려 있다. 조금이라도 늦거나 실수가 생기면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의 ‘경고’가 떨어진다. 컨베이어벨트에서 하루 종일 나사못을 조이는 영화 모던타임스 속 찰리 채플린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온라인으로 들어온 주문대로 물건을 담는 홈플러스 피커(picker) 노동자인 최상숙(54·가명)씨는 상자 6개가 실리는 대형 트롤리(카트)를 끌면서 매장을 돈다. PDA 단말기가 가리키는 물건을 찾아 담고 ‘총’이라고 부르는 바코드 리더기를 쏘면 단말기에 ‘성적표’가 뜬다. 빨리 찾아 담으면 파란색 알림이 뜨지만 속도가 느려지면 초록색, 노란색, 빨간색으로 바뀌며 경고한다.

같은 물건 10개를 담든, 곳곳에 흩어진 물건 10개를 담든 속도 평가 기준은 같다. 매일 집계되는 쇼핑 속도는 다른 직원과 비교 평가된다. 1등부터 꼴찌까지 순위가 매겨진다. 속도가 늦어지면 관리자의 호출을 받는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피커들의 작업 속도에 따른 벌점이나 관리자들의 질책은 없다”고 했지만 최씨는 “‘오늘 몸이 안 좋으냐’고 돌려 물어도 부담이다. 다른 직원들과 함께 있을 때 지적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마감 시간을 맞추려다 트롤리에 부딪혀 다친 동료도 있다. 마트산업노동조합에 따르면 피커 1명은 하루 평균 약 2만 5000보를 걷는다. 하루 3만 5000~4만보를 걷는 피커도 있다. 최씨는 “다친 사람이 나오면 관리자가 ‘차분히 하라’면서도 ‘시간 안에 하라’고 한다. 모순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온라인 주문을 배달하는 기사도 속도의 압박을 받는다. 다른 대형마트 온라인 주문은 2시간 단위로 배송받을 시간을 정할 수 있지만, 홈플러스는 1시간 단위로 지정한다. 10분 일찍 배달해도 고객 항의를 받을 수 있어 정해진 시간대에 배송해야 한다.

하루 만에 배송을 받을 수 있는 쇼핑몰 사정도 비슷하다. 수도권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40대 박철원(가명)씨는 갈수록 올라가는 UPH(시간당 생산량) 기준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쿠팡 측은 “UPH는 목표치가 없고 재계약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개인을 지적·독려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박씨는 “현장에서는 재계약에 영향을 준다고 한다. 열심히 노력해서 1시간에 100개를 포장해도 내일부터 회사가 120개씩 하라고 하면 해야 한다”면서 “1시간 쉬는 점심에도 UPH를 맞추려 일하는 경우도 봤다”고 말했다. 사내방송으로 속도가 떨어지는 직원 이름이나 일용직 전화번호를 호명하는 곳도 있다고 박씨는 전했다.

배달의민족이 도입한 AI 배차 모드도 논란이 됐다. AI 배차는 배달기사인 라이더에게 주문을 자동으로 배정하는 방식이다. 라이더가 배달 거절을 할 수 있지만, 거절이 많으면 배차가 지연된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AI 배차는 직선으로 최단 거리를 보여 주기 때문에 실제 배달 시간은 더 길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배민 관계자는 “AI 배차의 배달 시간은 직선거리가 아닌 실제 거리에 가깝게 환산한다”고 밝혔다.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2020-10-3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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