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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계획 어기고 저층부터 무리한 철거…여러 층 한꺼번에 부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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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ㅣ 수정 : 2021-06-11 01:55 사건·사고 섹션 목록 확대 축소 인쇄

‘무너진 원칙’ 속속 드러나는 붕괴 원인

꼭대기층부터 ‘톱다운 방식’ 철거가 기본
건물 옆·뒷면 통째로 부순 비상식적 철거
공기 단축·비용 아끼려 마구잡이식 진행
2주 만에 11채나 철거… 예정보다 빨라

“해체공사 ABC 안 지킨 인재” 한목소리
위험 감지할 감리자도, 안전 인력도 없어
지난 9일 발생한 17명의 사상자를 낸 철거 건물 붕괴사고와 관련, 지난 1일 철거 업체가 굴착기로 5층짜리 건물의 저층 일부를 부수고 있다. 이는 건물을 해체계획서에 따라 건물 위층에서 아래층 순서로 철거를 진행해야 하는데 이 순서를 지키지 않고 한꺼번에 무너뜨리기 위한 방법으로 알려졌다. 광주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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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일 발생한 17명의 사상자를 낸 철거 건물 붕괴사고와 관련, 지난 1일 철거 업체가 굴착기로 5층짜리 건물의 저층 일부를 부수고 있다. 이는 건물을 해체계획서에 따라 건물 위층에서 아래층 순서로 철거를 진행해야 하는데 이 순서를 지키지 않고 한꺼번에 무너뜨리기 위한 방법으로 알려졌다.
광주 연합뉴스

광주에서 철거 중이던 5층 콘크리트 건물이 붕괴해 사상자 17명이 발생한 사건에 대해 전문가들은 해체공사의 ABC를 지키지 않아 발생한 인재라고 입 모아 비판했다. 건물을 철거할 땐 무게중심을 건물 아래에 두기 위해 꼭대기층부터 부숴야 하는데, 이 간단한 기본 원칙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통상적인 철거의 2배 분량의 물폭탄을 퍼부은 것도 상식에 어긋난다. 사고가 난 건물은 견고한 철골구조의 건축물도 아니어서 마구잡이식 철거에 건물이 순식간에 한쪽으로 쏠리며 넘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철거업체가 공사 기간을 줄이려고 무리하게 작업을 진행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광주 동구 학동 4구역 주택 재개발 지역에 있는 지상 5층, 지하 1층 규모의 이 건물(전체면적 1592㎡)은 지난 9일 본격적인 철거가 시작됐다. 앞서 철거업체 관계자는 “8일 일부 낮은 부위를 철거하고 9일부터 실질적인 철거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 건물 뒤쪽으로 2층 높이 별관 성격의 구조물이 있었는데, 전날 이 건축물이 먼저 철거된 것으로 보인다. 철거업체는 저층 일부를 철거하면서 발생한 폐자재와 흙·모래 등으로 건물 3층 높이와 맞먹는 성토체(인공 언덕)를 쌓았고, 그 위에 굴착기를 올려 작업했다.
전날 도로를 덮쳤던 건물 잔해물은 어느 정도 정리된 모습이다. 광주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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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날 도로를 덮쳤던 건물 잔해물은 어느 정도 정리된 모습이다.
광주 연합뉴스

건물 철거의 정석은 내부에 잭서포트(지지대)를 층마다 설치하고 맨 위층부터 아래층으로 향하면서 한 층씩 해체하는 것이다. 그래야 붕괴를 막을 수 있다. 사고가 난 건물의 시공업체가 지난달 14일 광주 동구청에 제출한 해체계획서에도 5층부터 한 개층씩 ‘톱다운 방식’으로 제거하겠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사고 수시간 전 작업 사진을 보면 업체가 이런 순서를 지키지 않은 것으로 의심된다. 도로와 맞닿은 건물 앞쪽은 5층 높이까지 벽체가 온전히 남아 있는 반면 뒷부분과 옆면은 형태가 대부분 사라진 상태였다. 굴착기에 압쇄기(크러셔)를 달아 여러 층을 한꺼번에 부순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한 철거업체 대표는 10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강철 기둥을 쓴 건물이라면 뒤와 옆면을 통째로 긁어 나가도 무너지지 않을 텐데, 이 건물은 H빔을 사용한 흔적이 없어 보인다”며 “콘크리트 5층 건물을 난도질하듯 부수면 당연히 무너질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건축대장을 확인한 결과, 철거 대상 건물은 H빔 같은 철골을 사용하지 않고 콘크리트 조립식으로 지어졌다. 또 다른 철거업체 대표는 “5층 이상 건물은 위에서 아래로 층층이 해체하면서 내려오는데, 광주 현장에서는 왜 그렇게 도로 쪽 벽면만 높게 두고 불안정하게 철거했는지 의문”이라며 “성토체를 지상에 만들어 건물을 해체하는 방식은 쉽지만, 잔해물들이 하단에 쌓이면서 1~2층 콘크리트 벽면을 계속 압박할 수밖에 없다. 건물 균형이 쉽게 흔들리는 위험한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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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위험을 감지해 경고할 의무가 있는 감리자도, 도로를 통제할 안전 인력도 없었다는 점이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원철 연세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건물이 무너지기 전 부지직하는 소음이 났을 때만이라도 도로를 차단했다면 인명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며 “중장비 업자는 십중팔구 재하도급으로 공사권을 따냈을 것이고, 공사기간과 비용을 줄이려고 무리한 철거를 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실제 철거는 예정된 일정보다 상당히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시공업체는 무너진 건물을 포함해 일대 건물 12채를 이달 말까지 해체하겠다고 계획서에 써냈는데, 불과 2주 만에 건물 11채를 모두 부쉈다. 한 채에 이틀이 채 걸리지 않은 셈이다.

서울 이성원·광주 오세진 기자 lsw1469@seoul.co.kr
2021-06-11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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