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과 공정 사이… 세대차가 낳은 K직장인의 ‘동상이몽’ [빌런 오피스]

열정과 공정 사이… 세대차가 낳은 K직장인의 ‘동상이몽’ [빌런 오피스]

이은주 기자
입력 2024-08-07 18:18
수정 2024-08-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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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회 조각난 직장, K조직문화를 바꿔라

회사의 인사 명령이나 상사의 업무 지시 때문에 괴로우면 직장 내 괴롭힘일까. 서울신문과 행복한일연구소가 직장인 147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괴롭힘 인식·감수성 조사에 의하면 인사 명령이나 업무 지시를 받는 위치일수록 정당한 인사나 업무라도 괴롭힘으로 인식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4050세대(55.3%)보다 2030세대(65.5%)가, 관리자급(48.5%)보다 직원급(63.1%)이 괴롭힘이란 인식을 드러냈다. 괴로움이 곧 괴롭힘이 있었다는 방증이 될 수는 없지만 개인은 자신의 감정과 경험을 중심으로 상황을 판단하기 마련이다. 업무 지시로 인한 개인적 불편함이 더 크게 느껴진다면 괴로움을 괴롭힘으로 해석할 초기 환경은 이미 형성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일단 괴로운 감정 상태에 이르면 직장 생활을 불편하게 하는 정보를 더 민감하게 대하는 확증 편향에 빠지거나 자신이 처한 상황을 자의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커진다. 관리자가 회사의 방침이나 업무의 긴급성을 고려해 내린 지시 속에 자신을 괴롭히기 위한 고의가 감춰져 있다고 보게 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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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사전에 합의된 명확한 업무 지시를 내린다면 직원을 괴로운 상태에서 구해 낼 수 있을까. ‘괴로운 인사 명령·업무 지시는 괴롭힘’이냐는 질문에 대한 고용 형태별 조사 결과를 본 전문가들은 또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이 상황을 괴롭힘으로 인식하는 비율은 비정규직 70.2%, 정규직 60.2%, 무기계약직 48.1% 순이다. 무기계약직은 정규직처럼 지속적인 고용 안정을 보장받되 사전에 합의된 업무에 주로 배치되는 직제다.

고용 형태별로 다른 해석

“괴로운 인사·업무 지시는 괴롭힘”
비정규직·정규직·무기계약직 順
인사 명령·업무 지시가 괴롭힘의 소재가 되기 어렵다는 인식이 무기계약직에서 가장 높게 드러난 것을 두고 행복한일연구소 관계자는 ‘학습된 침묵’일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7일 지적했다. 그는 “회사와 ‘헤어질 시기’가 일단 정해져 있는 비정규직의 경우 부당함을 참는 일과 별도로 부당한 상황이 어떤 것인지 자각하고 있지만, 한 직장에 계속 머물러야 하는 무기계약직은 부당한 상황에 노출돼도 참아 왔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국공무원노조의 참여로 공무원·공공기관 종사자 참여율이 90%에 이를 정도로 높았던 이번 조사에서 무기계약직의 표본수는 적었지만,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무기계약직만의 현실 인식을 보여 준 답변은 또 있었다. ‘팀원의 과실 때문에 혼잣말로 욕을 하거나 물건을 던지는 등 혼자 신경질을 내는 행동은 직장 내 괴롭힘이 아니다’라고 잘못 인식한 응답률 역시 무기계약직(33.3%)이 정규직(18.5%), 비정규직(5.3%)보다 크게 높았다.

고용 형태별·세대별·성별·직급별로 각자 위치에서 개인적 직관에 기대 직장 내 괴롭힘을 다르게 인식하는 경향은 인식 조사에서 대체적으로 나타난 모습이다. 이와 별도로 직장 내 괴롭힘이 될 수 있는 행동을 수용할 수 있는지를 물은 감수성 조사에서는 세대별로 특히 질색하는 관행의 윤곽을 볼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한국 특유의 일상적 조직 문화에 대한 수용력은 전 세대에 고르게 나타난 반면 2030세대에게는 직장인 개인의 자율적 시간을 침해하는 직장 상황을 용인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엿보였다.

세대 간 인식 차에 악순환

2030, 합리적 지시·개인 시간 우선
상사는 업무 교육·실수 지적 기피
우선 ‘상사·선배는 부하·후배에게 편한 호칭을 쓰거나 반말을 할 수 있다’는 질문에 ‘예’라고 답한 비율에 있어 2030세대(55.8%)와 4050세대(55.7%)의 응답률 격차는 크지 않았다. ‘개인 연차·휴가를 쓰기 전 상사 및 동료와 사전에 협의해야 한다’는 질문에 대해선 2030세대(75.0%)가 4050세대(68.4%)보다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직장 내 호칭 문제나 휴가 일정 협의는 직원 간 조율하는 형태의 직장 매너다. 이와 다르게 업무 시간과 업무 외 시간의 경계를 설정하는 형태의 직장 매너에 대해선 세대별 감수성 격차가 확인됐다. ‘상사가 지시한 일은 불합리하게 생각돼도 일단 해야 한다’는 질문에 ‘예’라고 답한 응답률은 2030세대(18.4%)가 4050세대(24.3%)보다 5.9% 포인트 낮았다. ‘업무 시간이 아니어도 카카오톡이나 전화 등을 통해 업무 지시를 할 수 있다’는 데 수긍한 응답률 역시 2030세대(14.2%)에서 4050세대(18.8%)보다 4.6% 포인트 낮게 집계됐다.

결국 2030세대에게는 합리적인 업무 지시, 투명한 정보 소통에 대한 기대가 위 세대에 비해 크게 나타났는데 이 세대는 이러한 요건이 갖춰진 상태를 ‘공정’으로 인식했다. 역으로 ‘일을 배우려면 (불합리하게 생각돼도 일단 한다)’거나 ‘급하면 (퇴근 뒤 업무 지시를 할 수 있다)’는 식으로 업무를 우선순위에 두는 ‘열정’을 발휘하라는 요구에는 선을 긋고 있는 것이다. 공공기관 노무컨설팅을 다수 하고 있는 한 공인노무사는 “이와 같은 세대 간 인식 차 때문에 직장 내 괴롭힘 신고가 이뤄지는 경우들이 생기자 상사가 업무를 가르치고 실수를 지적하는 의무와 책임을 내려놓는 일이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건강한 조직 문화 해법은

‘생각 없는 충성’에 전범 국가 된 獨
비판적 판단 중시 문화로 갈등 줄여
자신의 직관대로 조직 내 사건을 해석하는 직원들을 조율해 어떻게 건강한 조직 문화를 만들까. 서유정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연구위원은 2000년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만들려다 관련 피해율이 2%에 그침에 따라 결국 법 제정을 하지 않았던 독일 사례를 예로 들었다.

상생적 노사관계, 높은 직업윤리의식에 더해 과거사 역시 독일의 직장 내 괴롭힘 피해율이 낮은 요인으로 꼽힌다. 서 연구위원은 “나치 전범인 아이히만이 조직원으로서 상부 명령을 비판 없이 따랐기 때문에 인종 학살 범죄가 일어났다고 보고, 독일에선 비판적인 판단 능력을 기르는 데 시민교육의 목표를 두었다”고 설명했다. 아이히만은 ‘나는 죄가 없다. 국가에 충성했을 뿐’이라고 항변했는데 ‘생각 없는 충성’이야말로 타인을 괴롭힐 흉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독일 학생과 직장인들에게 일깨우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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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8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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