룩셈부르크 대공세자 6·25전쟁 룩셈군 배속 한국인 참전용사와 특별한 만남

룩셈부르크 대공세자 6·25전쟁 룩셈군 배속 한국인 참전용사와 특별한 만남

강국진 기자
강국진 기자
입력 2022-11-29 17:57
업데이트 2022-11-29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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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셈부르크 대공세자가 6·25전쟁 당시 룩셈부르크군 소속으로 참전했던 한국인 참전용사를 만났다.

29일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기욤 장 조제프 마리 룩셈부르크 대공세자는 김성수옹과 함께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룩셈부르크 참전비에 참배했다. 김옹은 1951년부터 1953년까지 룩셈부르크군 소속으로 배속돼 참전했다. 기욤 대공세자는 김옹에게 감사 메시지와 함께 왕실을 상징하는 특별 선물을 증정했다.

룩셈부르크는 파병 당시 인구가 20만명에 불과했지만 전투병력 100명을 한국에 보냈다. 1950년 10월 1일 지원병 48명으로 1개 소대를 편성해 벨기에군 대대 A중대에 편입시켜 참전했다. 벨기에·룩셈부르크군 대대는 1950년 12월 18일 벨기에 앙베르를 출발해 1951년 1월 31일 부산에 상륙했다. 룩셈부르크 소대는 1951년 1월 31일~8월 25일 활동한 제1차 분견대와 1952년 3월 28일~1953년 1월 7일 활동한 제2차 분견대로 구분돼 연인원 100명을 파병했다. 2명이 전사하고 13명이 다치는 희생이 있었고, 현재 6명이 생존해 있다.

1975년 시작한 우리 정부의 6·25전쟁 유엔참전용사 재방한 프로그램에는 지금까지 참전 22개국에서 3만 3751명이 초청됐고, 이 가운데 룩셈부르크에선 참전용사 및 유족 150명이 방한했다. 박민식 보훈처장은 “6·25전쟁은 룩셈부르크가 해외 전쟁에 파병한 유일한 군사 개입 사례였고, 룩셈부르크는 유엔군 가운데 인구 대비 가장 많은 병력을 파병한 국가였다”면서 “룩셈부르크 참전용사들의 공헌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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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을 찾은 기욤 장 조제프 마리 룩셈부르크 대공세자가 6·25 당시 룩셈부르크군에 배속돼 함께 싸운 참전용사인 김성수씨와 손을 잡고 대화를 나누고 있다.   국가보훈처 제공
29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을 찾은 기욤 장 조제프 마리 룩셈부르크 대공세자가 6·25 당시 룩셈부르크군에 배속돼 함께 싸운 참전용사인 김성수씨와 손을 잡고 대화를 나누고 있다.
 국가보훈처 제공


강국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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