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자살뒤 1개월간 모방시도 최대35% 증가
2008년 11월, 20대 중반의 한 여성이 자살을 시도했다. 구직 실패, 경제적 어려움, 연인과의 이별 등으로 인한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버리려 했던 것. 고(故) 최진실씨의 자살 이후 한 달여 만의 일이었다. 현실이 암흑 같던 그에게 최씨의 사망은 더 큰 충격이었다. 평소 악플과 루머로 괴로워했다는 고인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그래, 차라리 그녀처럼 편해지자.” 몇 주 동안 망설이던 그는 결국 최씨처럼 목을 매 자살을 시도했다. 그 길만이 유일한 탈출구처럼 느껴졌다. 가족들이 조기에 발견한 덕분에 그는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 그후 2년여의 시간이 흐른 지금, 그는 “평소 좋아했던 최진실씨 사망 이후 삶에 더 의욕이 없었다. 왠지 모든 게 편해질 것만 같은 충동에 해서는 안 될 선택을 했다.”고 말했다.●

최근 배우 박용하씨 등 연예인들의 자살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연예인 등 유명 인사의 자살이 일반인에게 영향을 미쳐 연쇄자살을 낳는다는 ‘베르테르 효과’가 최소 한 달간 지속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또 자살한 연예인의 위상이나 지명도에 따라 일반인의 자살 및 자살 시도가 한 달 동안 최대 35%까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예인 자살 뒤 일반인 자살이 잇따른다는 지적은 많았지만 그 여파가 어느 정도인지를 구체적 수치로 분석해 낸 것은 처음이다. 학계, 연예계, 정치권 등은 “베르테르 효과 지속 기간이 파악된 만큼 이를 토대로 한 체계적인 연구와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1일 소방방재청의 ‘연도별 자살 및 자살미수 관련 119 출동현황(2008~2010년 4월)’과 이를 토대로 한 경찰 및 학계 분석에 따르면 안재환씨 자살(2008년 9월8일) 이후 일반인 자살 및 자살시도는 8월 1414건에서 9월 1669건으로, 한 달 사이 18%가 증가했다. 그러나 바로 다음 달 최진실씨(10월2일)와 장채원씨(10월3일) 사망 이후에는 1669건에서 2084건으로 25%가 증가했다가 11월 들어 1502건으로 다시 감소했다. 자살 여파가 한 달여 동안만 지속된 셈이다.
장자연씨(2009년 3월7일)의 경우에도 자살 및 자살시도가 2월 1372건에서 3월 1851건으로 무려 35%나 늘었다가 다음 달 1737건으로 줄어들었다. 최진영씨(2010년 3월9일) 자살 직후에는 18%가 증가하면서 한 달 이상 자살 추세가 이어졌다.
전문가들은 “베르테르 효과가 한 달 이상 지속된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라고 말했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한국인에게 유독 두드러지는 ‘대세추정의 효과’, 즉 타인의 행동에 영향을 받고 시선을 의식하는 성향이 크게 작용한 탓이다. 미국, 유럽 등은 베르테르 효과가 크게 나타나지 않는다.”면서 “체념, 자포자기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 연예인 자살은 갈등 해결을 위한 하나의 ‘가이드’가 된다.”고 말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모방자살을 부추길 수 있는 지나친 보도 등을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불암씨 “연예인 신중히 처신해야”
이에 대해 원로 배우 최불암씨는 “대중의 사랑을 받고 사는 연예인은 생명도 국민과 팬들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매사에 신중히 처신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병국 국회 문방위원장은 “자살 예방캠페인, 기획사의 자사 연예인 우울증 등 관리체계 강화 방안 등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2010-08-02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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