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팔아야 교장 된다?”…교사시절부터 뇌물 횡행

“영혼 팔아야 교장 된다?”…교사시절부터 뇌물 횡행

입력 2010-08-23 00:00
업데이트 2010-08-23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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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 사이에서는 교장이 되려면 교육을 포기하고 영혼을 팔아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서울 지역의 김희만(가명) 교사는 23일 “교감이 되려고 경쟁하는 교사들은 교무부장을 하거나 최고 근무성적평정(근평)을 받으려고 지금도 돈을 뿌리고 있다”고 말했다.

 교감이 되려면 최소 2~3년 동안 교장이나 교감에게 수백만원을 명절 떡값으로 상납하고 생일 등 특별한 날에는 100만원씩 바친다.

 김 교사는 “학교에서는 선물보다 현금을 주는 것이 관행”이라며 “올해 교감이 안 되더라도 다음해를 노려야 하기 때문에 관리 차원에서 몇 년이고 금품을 전달한다”고 말했다.

 학교 내부자들은 교장이나 교육장이 되려면 뇌물의 단가는 훨씬 커진다고 전했다.

 충북의 이세진(가명) 교사는 “누구는 교감을 단 지 3년 만에 교장이 되고,누구는 6~7년이 지나도 교장 발령이 안 난다”며 “승진을 못 한 교감들을 만나보면 성격상 ‘관리’를 제대로 못 했다고 털어놓더라”고 전했다.

 이 교사는 “교육계에서는 꽤 오래 전부터 ‘감오장천’이라는 이야기가 떠돌았는데,이는 교감이 되려면 500만원,교장이 되려면 1천만원이 필요하다는 뜻”이라며 “지금은 그 액수가 훨씬 커졌다”고 진단했다.

 사정기관이 교육비리 척결에 고강도 수사를 하고 있는 요즘에도 교사들이 거액의 돈을 겁 없이 뿌리는 이유는 현금 수수가 해방 이후부터 이어져 온 관행이고,뿌린 돈은 이후 몇배로 불려 회수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관계자들은 말했다.

 최근 공정택 전 서울시교육감이 법원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현직 교장과 교감,서울시교육청 간부 등 26명이 교단과 교육계에서 퇴출당한 것도 유리한 인사를 부탁하며 거액의 현금을 뿌려댔기 때문이다.

 ●수직적 승진 구조가 비리 불러

 어느 조직보다 청렴도가 요구되는 교직 사회에서 이런 인사비리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우리나라 특유의 승진 구조 때문이라고 내부자들은 진단한다.

 승진 구조를 살펴보면 일단 교감이 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교감 승진을 바라는 부장들은 근평이 좋아야 하는데 근평은 교장과 교감이 50%씩 매긴다.

 근평에서 ‘수’를 여러 번,그것도 ‘수’를 받은 그룹에서 1등을 의미하는 일명 ‘1수’ 또는 ‘왕수’를 받아야 교감자격연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평가자인 교장,교감에 대한 ‘로비’가 치열하다.

 경기도 초등학교에서 교장을 지낸 이모씨는 “수를 받으려면 교장,교감에게 경쟁자보다 더 많은 현금과 선물을 해야 한다”며 “아무리 근무를 잘해도 ‘1수’를 주지 않기 때문에 아부를 떨고 금품 공세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보통 교감이 되는 데는 20년 이상이 걸리는데 이 시간을 단축하고 싶은 이들은 교육전문직인 장학사로 진출한다.

 장학사로 5년 이상 근무하면 교감자격연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학사 시험을 치려면 교장의 추천서가 필수인데다 교육청 면접이 중요하기 때문에 교장과 교육청 인사들에 대한 로비가 횡횡하고 있다.

 교감 자격증을 얻은 뒤에는 발령을 받기 위해 로비에 나선다.

 교장 자릿수보다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 1.2~1.5배가량 많아서 발령을 받으려면 여기저기 ‘인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감이 교장이 되려면 역시 근평이 중요하기 때문에 평가자인 교장과 교육청을 관리해야 한다.

 교장이 된 다음에는 이른바 ‘물 좋은 학교’로 발령받으려고 로비에 나선다.

 서울의 현직 교사 B씨는 “물 좋은 학교란 학급수가 많은 인문계 학교를 말하는 데 큰 학교에는 교감이 되려는 교사들이 많아서 자연스럽게 금품이 많이 들어 온다”고 귀띔했다.

 규정상 교장은 4년씩 두 번 밖에 할 수 없는데 이를 마치고도 정년이 남은 교장들은 초빙형 교장으로 가고 싶어 교육청에 로비를 벌이기도 한다.

 초빙형 교장은 교장공모제의 일종으로 교장 자격증 소지자를 대상으로 교육청이 결원이 생긴 학교의 교장을 선발하는 제도다.

 김대유 경기대 교직학과 겸임교수는 “상급자가 결재권자이자 근무 평가자이기 때문에 평교사들은 승진을 꿈꿀 수밖에 없는데 근평을 토대로 소수에게만 교감,교장을 주기 때문에 비리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교육전문직 학교 복귀 못하게 해야”

 현행 제도를 대대적으로 개혁하지 않고서는 교육계 인사비리를 뿌리 뽑을 수 없다는 목소리가 높다.

 우선 교육전문직으로 진출하려는 경쟁에서 비롯되는 비리를 막으려면 경로 간 전직을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김갑성 한국교육개발원 박사는 “교육전문직이 인기가 있는 이유는 교감,교장이 되기 위한 지름길이기 때문인데 교육전문직이 학교로 돌아갈 수 없도록 하면 경쟁 자체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교원 평가,학교 평가,행정지도 등 장학활동에 관심 있는 교사들만 교육전문직으로 발탁하고 이들이 이후 교감,교장으로 학교에 돌아갈 수 없도록 하면 비리가 생길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해방 이후 도입된 교장자격증 제도 폐지해야”

 해방 후부터 이어져 온 교장 자격증 제도를 폐지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김대유 교수는 “인사 비리는 교사,교감,교장 사이에 칸막이를 치고 별도의 자격증을 부여해 승진의 개념을 도입했기 때문에 생겼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전체 35만 교원 중 국공립 교장 9천명,교감 9천명,장학사 4천명 등 2만2천여명이 앞으로 몇 년간 교장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인력풀로 이들 사이의 비리는 심각한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외국에서는 일정한 조건을 갖춘 교사는 누구나 교장직에 응모할 수 있지만,우리나라는 특수학교를 제외하고 교장 자격증 없이는 응모도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이세진 교사는 “교장 제도를 투트랙으로 가져가서 일부는 과거의 시스템을 따르고 일부는 교장 자격증 유무와 관계없이 교장이 될 수 있는 시스템으로 간다면 결국 시스템 간 경쟁에 의해 비리도 줄고 교육의 질도 높아질 것”이라고 제시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교직 사회의 풍토가 바뀌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박부권 동국대 교육학과 교수는 “비리 교사는 일벌백계로 다스리고 자질 없는 교사는 과감하게 퇴출하되 교원을 존경하고 대우하는 우리 사회 고유의 풍토는 그대로 살려나가야 한다”며 “그래야지 좋은 교사가 남고 청렴도도 높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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