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고엽제 사용 보고서’ 작성한 앨빈 영 박사 인터뷰
![앨빈 영](https://img.seoul.co.kr/img/upload/2011/05/30/SSI_20110530203503.jpg)
![앨빈 영](https://img.seoul.co.kr//img/upload/2011/05/30/SSI_20110530203503.jpg)
앨빈 영
영 박사의 이 같은 주장은 1970년대 캠프 캐럴에서 근무한 전 주한미군 스티브 하우스가 부대 안에 고엽제로 추정되는 물질이 들어 있는 드럼통을 대량으로 매립했다고 한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1968년 DMZ에 살포하기 위해 한국에 들여온 고엽제는 얼마나 되나.
![존스턴섬서 조사 앨빈 영 박사가 1974년 하와이 인근 존스턴 섬에서 고엽제가 담긴 드럼통 주변을 조사하고 있는 모습. 앨빈 영 제공](https://img.seoul.co.kr/img/upload/2011/05/30/SSI_20110530180846.jpg)
앨빈 영 박사가 1974년 하와이 인근 존스턴 섬에서 고엽제가 담긴 드럼통 주변을 조사하고 있는 모습.
앨빈 영 제공
![존스턴섬서 조사 앨빈 영 박사가 1974년 하와이 인근 존스턴 섬에서 고엽제가 담긴 드럼통 주변을 조사하고 있는 모습. 앨빈 영 제공](https://img.seoul.co.kr//img/upload/2011/05/30/SSI_20110530180846.jpg)
존스턴섬서 조사
앨빈 영 박사가 1974년 하와이 인근 존스턴 섬에서 고엽제가 담긴 드럼통 주변을 조사하고 있는 모습.
앨빈 영 제공
앨빈 영 박사가 1974년 하와이 인근 존스턴 섬에서 고엽제가 담긴 드럼통 주변을 조사하고 있는 모습.
앨빈 영 제공
→당시 사용하고 남은 고엽제가 1978년 캠프 캐럴에 매립됐을 가능성은 없나.
-없다. 애초 8090㏊에 뿌릴 고엽제를 들여왔는데, 막상 7330㏊에 살포하니 모두 동났다.
→미군이 다른 경로를 통해 추가로 가져온 것은 아닐까.
-베트남에서의 군수물자 수송은 ‘공군물자사령부’의 통제 아래 이뤄지기 때문에 기록에 없는 것이 다른 루트로 올 수는 없다. 미 본토에서 온다면 미시시피의 걸프포트에서 왔다는 얘기인데, 그런 일은 없었다. 당시 내가 거기에서 환경병과 장교로 근무해서 잘 안다. 당시 기록에는 살포하고 텅 빈 에이전트 오렌지(고엽제) 드럼통 380개와 에이전트 블루 드럼통 635개를 물이나 디젤 연료로 씻은 뒤 살포를 담당했던 한국의 1군사령부에 넘겨줬고, 모뉴론을 담았던 섬유 재질의 드럼통 7600개는 현장에서 불태웠다고 돼 있다. 한국군에 넘겨준 드럼통은 금속 재질이어서 불태울 수가 없었다. 디젤 연료를 담았던 7000개의 드럼통도 한국군에 줬다.
→한국군은 금속 드럼통들을 어떻게 했을까.
-한국군에 넘겨줬다고만 돼 있고 그 다음엔 기록에 없으니 모르겠다. 어디에 팔았을 수도 있다. 그 드럼통들은 고급 강철로 만든 것이었으니까. (웃으면서)그땐 1968년이었다(한국이 가난했다는 뜻).
→한국 외에 남은 고엽제들을 미군은 어떻게 했나.
-1970년부터 발효된 새 규정에 따라 베트남에 보관돼 있다가 1972년 돌아온 고엽제와 1968~1969년 미 본토에 보관돼 있던 고엽제는 1977년 태평양 한가운데의 배에서 모두 소각했다.
→당시 DMZ 고엽제 살포 최종 명령자는 누구였나.
-한국 1군사령부가 했다. 미군은 고엽제를 제공한 역할만 했다. ‘최원식’이라는 한국군 소령이 살포 전 10개월간 미 앨라배마 주의 화학훈련센터에서 교육받고 돌아갔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서울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2011-05-31 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