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 커버스토리] 복지사의 忘年

[송년 커버스토리] 복지사의 忘年

입력 2011-12-31 00:00
업데이트 2011-12-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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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사 아빠는 대리운전 뛰며 분유값 벌죠”

한겨울로 접어드는 세밑이면 전국 46만여명의 사회복지사들 가슴에는 시린 고드름이 열린다. 복지 논쟁이 정치권을 넘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지만 복지정책의 최전선에서 뛰는 ‘사회복지사’들의 복지는 외면받고 있어서다. 그들은 ‘부부 사회복지사가 아이를 낳으면 기초생활수급자로 전락한다.’며 자조한다. 이런 그들이지만 ‘봉사직’으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힘겨운 현실을 하소연할 곳도 없다. 정치권과 정부, 지방자치단체들도 실상을 알지만 외면하고 있다. 지난 3월 ‘사회복지사 처우개선법’이 가까스로 마련됐지만 예산 확보 방안조차 없다. 이 때문에 사회복지사 상당수가 이직을 꾀하고 있다. 이러니 아무리 사회복지사가 많아도 사회복지 전달체계가 짜임새 있게 운용될 리 없다. 실상을 알아보기 위해 그들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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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한 낡은 집에 세들어 사는 정모(65)씨가 두꺼운 외투를 입고 주방일을 하고 있다.  손형준기자 boltagoo@seoul.co.kr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한 낡은 집에 세들어 사는 정모(65)씨가 두꺼운 외투를 입고 주방일을 하고 있다.
손형준기자 boltago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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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오전 7시 50분. 인천의 한 장애인 생활시설에서 근무하는 사회복지사 김민주(32·여·가명)씨의 출근 시간이다. 사무실에 들어선 그는 상황일지를 살피고, 전 근무자의 업무 인수인계를 받은 뒤 8시에 뇌성마비 장애인의 면도와 세수를 돕고, 식사를 내왔다. 장애인들의 일그러진 입을 들여다보는 김씨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김치를 잘게 썰어 먹여도 흘리는 양이 반이지만 내색하지 않고 다시 숟가락을 잡는다. 뇌성마비 장애인은 근육 기능이 점차 사라져 음식이 기도로 들어가면 사망할 수도 있어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 예전에 한 장애인이 빵을 먹다 숨진 사례도 있었다. 그는 하루 12시간을 근무하는 2교대 근무자로, 휴일이 따로 없다.

혼자서 5명의 뇌성마비 장애인과 지적장애인의 식사·목욕·나들이를 돕기 때문에 개인 시간은 엄두도 못 낸다. 힘에 부치지만 도움을 청할 곳도 없다. 낮 12시. 다른 사회복지사에게 부탁해 잠시 기자와 만난 김씨는 “오후 9시가 되면 시설입소자들이 잠을 자는데 이때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고 했다. 장애인 시설에서 근무한 지 올해로 8년째. 처음에는 월급으로 수당까지 합쳐 130만원을 받았지만 지금은 250만원을 받는다. 그나마 장애인 생활시설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보수가 많은 편이다. 하지만 자녀들 보육비로 130만원을 지출해야 한다. 세금과 국민연금 등을 떼면 남는 돈은 100만원도 안 된다. 김씨는 “시설 원장이 ‘실업자가 넘치는데 너희는 행복한 줄 알라’고 한다.”면서 “육아휴직 기간도 1년에서 4개월로 임의로 줄여 버렸지만 누구도 이의 제기를 못했다.”고 토로했다.

서울의 한 복지관에서 근무하는 사회복지사 이정민(30·여·가명)씨. 기업체에서 잠시 근무하다가 자신의 대학 전공을 살려 2006년 사회복지사가 됐다. 하루 6명의 장애인을 맡아 취업 교육·알선 업무를 돕는다. 보건복지부 평가가 있을 때는 서류 정리를 하느라 연속해 60시간을 일하기도 했다. 연중 두달 정도는 꼬박 오후 11시까지 근무해야 한다. 퇴근 시간이 따로 없다. 장애인과 가족이 “지원이 너무 부실하다.”고 나무라도 비난이 두려워 대꾸조차 못한다. 그럼에도 보수는 무조건 9시간(오전 9시~오후 6시) 기준으로 책정된다.

대우가 더 좋은 직장으로 이직하려 해도 이씨처럼 아직 아이가 없는 기혼 여성에게는 더욱 가혹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대체 인력이 부족해 육아휴직을 해야 하는 기혼여성은 퇴짜를 맞기 일쑤다. 복지부는 출산을 장려하지만 일선 복지기관은 상황이 정반대인 셈이다. 이씨는 “복지기관마다 면접에서 육아휴직 문제를 거론하고, 어떤 곳은 ‘아이가 생기면 어떻게 할 거냐’고 따져 물어서 면접관과 다투고 나온 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08년 이직 전 10차례의 면접에서 모두 낙방했다. 현재의 직장은 “아이를 낳더라도 문제가 없다.”고 해 곧바로 입사를 결심했다. 이씨는 여전히 공무원이나 공기업에 대한 미련이 있다고 했다. 그는 “나도 공무원 신분이 보장되는 장애인 특수교사나 대우가 좋은 공기업 직원으로 가기 위해서 지금도 짬짬이 공부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씨가 2006년 사회복지사로서 처음 받은 월급은 기타 공제비용을 모두 합쳐 90만원. 많이 받을 때는 160만원까지도 받았다. 연봉으로 치면 1800만원 수준. 현재는 2200만원을 받는다. 6년간 고작 400만원이 올랐다. 주변에는 3~4년 동안 연봉이 100만원도 오르지 않은 사람이 수두룩하다.

물론 그에게도 사회복지사로서의 자부심이 있다. 하지만 사회 분위기는 언제나 사회복지사를 열악한 임금을 감내해야 하는 ‘봉사직’으로만 여긴다. 엄연히 직장인이지만 주변에서는 성직자처럼 모든 것을 포기하고 헌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남편과 맞벌이하는 나는 상황이 그래도 좋은 편이지만 한 남자 사회복지사는 애를 낳고 나서 ‘분유값이라도 더 벌겠다’며 야간에 대리운전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국민들을 위해 봉사만 하라고 윽박지르기 전에 최소한 ‘전문직’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적정한 처우 등 근무조건을 보장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2011-12-31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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