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비정규직·하청노동자 실태 드러내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비정규직·하청노동자 실태 드러내

입력 2016-12-14 09:20
업데이트 2016-12-14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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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관련자 14명 입건…서울시도 안전업무 직영 전환 등 대책 마련‘메피아’ 구조적 비리도 수면으로…이후에도 현장근로자 사고 잇따라

올해 5월 28일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홀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용역업체 직원 김모(20)씨가 열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김씨의 죽음은 그동안 사각지대에 있던 비정규직 하청노동자와 청년들의 열악한 직업환경을 세상에알리는 계기가 됐다. 사고의 기저에 깔린 메피아(서울메트로+마피아)의 구조적 비리를 바로잡게 하는 단초이기도 했다.

◇ 언젠가 일어났을 수밖에 없는 사고

서울메트로의 스크린도어 관리 외주업체 은성PSD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김씨는 스크린도어 오작동 신고를 받고 혼자 점검에 나섰다가 변을 당했다.

점검은 2인 1조로 하게 돼 있으나 인력 부족에 시달리던 상황에서 김씨는 홀로 플랫폼에 들어섰다. 서울메트로는 김씨가 스크린도어 작업을 한다는 사실을 파악하지 못해 열차 운행을 중지하지 않았다.

은성PSD는 평소 작업현장 실태 점검이나 안전 교육 등 기초적인 관리·감독을 전혀 하지 않았고, 김씨 사망 당시 근무를 감독했어야 할 중간 관리자는 사무실을 무단으로 이탈했다.

서울메트로에서 퇴사한 직원들이 은성PSD 대표 등 고위 임원을 맡는 대가로 사업을 수주한 사실도 드러났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전적자가 입사한 업체와 서울메트로 간 유착 및 횡령·배임 등 문제가 수면으로 떠올랐다.

사고 당시 기준으로 서울시 산하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의 전적자는 총 682명이었다. 이 가운데 182명이 외주업체 등에 재직 중이었다.

서울메트로는 관리 책임이 있는 원청업체임에도 ‘현장 점검 강화’, ‘용역업체 안전 교육 강화’ 등 기본 매뉴얼조차 이행하지 않았다.

지난해 강남역에서 똑같은 유형의 사망사고가 있었고, 최근 수년간 이 같은 사고가 잇따랐음에도 재발방지 대책을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부서 간 이기주의’와 ‘책임 떠넘기기’ 행태만 보였다.

◇ 비정규직 처우개선…안전 증진 위한 제도 보완

이번 사고는 청년 비정규직의 열악한 실태를 여실히 드러냈다. 불과 20세였던 김씨의 사망 당시 소지품은 정비도구와 컵라면 한 개뿐이었다. 평소 그가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웠음을 짐작하게 해 많은 이의 마음을 울렸다.

같은 일을 하는 정규직 월급은 180만∼220만원이었지만, 비정규직이던 그의 급여는 140여만원에 불과했다. 반면 서울메트로 출신 임직원들은 매월 평균 김씨 급여의 3배에 이르는 434만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사고 이후 구의역에는 추모공간이 마련됐다. ‘아들 같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고인이 정규직이었다면 이런 상황에서 근로했겠느냐’ 등 고인의 넋을 달래고 사회구조를 비판하는 내용의 포스트잇이 연일 붙었다.

사고 이후 비정규직 노동자 처우개선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과 행사가 이어졌다. 비정규직 실태와 메피아로 대표되는 특권적 관행 등 구의역 사고로 드러난 문제점도 곳곳에서 토론 주제로 올랐다.

현장 안전을 실질적으로 증진할 방안도 제시됐다.

서울시는 시내 307개 지하철역을 전수조사해 101곳을 정비가 필요한 곳으로 분류하고, 김포공항역과 광화문역 등 ‘취약 역사’ 9곳 스크린도어를 내년 상반기까지 전면 교체하기로 했다.

2018년까지 1∼9호선 전체 역 스크린도어에 안전한 레이저 센서를 도입하고, 2021년까지는 1∼8호선 전 역사 스크린도어 고정문을 비상문으로 바꾼다.

승강장 안전요원 배치를 확대하고, 기관사 업무내규에 전동차 내 긴급 상황 발생 시 ‘현장 확인’ 등 내용을 추가했다. 장애 조치에 관한 세부 규정도 마련할 예정이다.

안전 관리를 소홀히 하고 서로 책임을 떠넘기다가 젊은이의 생명을 앗아간 관리자들은 법적 책임을 질 전망이다.

경찰은 서울메트로, 김씨가 속했던 정비용역업체 은성PSD, 구의역 역무실 등이 모두 김씨 사망에 책임이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관련자 14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로 입건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 메피아 근절을 위한 노력

서울메트로를 운영하는 서울시는 이번 일을 계기로 스크린도어 유지보수와 전동차 경정비 등 지하철 안전 관련 업무를 모두 시 직영체제로 전환했다.

서울도시철도 자회사 도시철도ENG의 안전업무 2개 분야(전동차 정비, 궤도보수)도 직영으로 전환키로 했다.

시는 직영 전환에 맞춰 안전업무 직렬 무기계약직을 신설해 일반을 포함한 공개경쟁으로 뽑았다. 연봉도 10∼21% 인상했다.

‘메피아’ 근절을 위해 전적자를 퇴출하고, 직영 전환 후에도 이들을 배제하기로 했다. 민간위탁 계약이나 임금피크제 등에서도 전적자 특혜를 없앤다.

직영 전환으로 근로자는 신분보장과 처우개선 혜택을 받고, 그간 민간위탁으로 경시됐던 안전 관련 업무의 전문성과 책임의식이 높아져 고객서비스와 안전도 강화될 것으로 시는 기대하고 있다.

경찰은 은성PSD 외에도 다른 여러 하청업체가 서울메트로 출신을 채용하는 등 이유로 서울메트로와 특혜성 계약을 맺고 과다한 사업비를 받았을 개연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 하청업체 내부의 횡령·배임 의혹, 서울메트로 전적자의 역사 상가 임대 관련 특혜 여부 등도 수사 대상이다.

◇ 여전히 ‘약자’인 현장 근로자들

구의역 사고 후 불합리한 문제들이 일부 해소됐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원-하청 문제를 둘러싼 갈등과 근로자의 아픔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만연하다.

올 6월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직원이 빌라 3층에서 안전장치 없이 에어컨 실외기를 점검하다 추락해 숨졌다.

9월에는 김포공항 50대 여성 청소노동자들이 지속적 성폭력과 과도한 업무강도에 반발, 삭발과 단식투쟁을 벌였다.

같은 달 SK브로드밴드 하청업체의 한 근로자는 비가 오는데도 전신주에 올라가 인터넷 개통 작업을 하다가 감전돼 추락한 뒤 숨졌다.

이달 초에는 경기도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건설현장에서 용접작업을 하던 40대 하청업체 직원이 질식하는 사고가 났다.

하청업체들은 원청에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계속 요구하지만, 여전히 이익은 발주처와 원청에만 돌아가고 위험은 근로자들이 부담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광택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은 “큰 틀에서 보면 하청노동자들과 원청의 관계가 명확하지 않아 책임 소재가 불명확한 문제가 있다”며 “경제 분야에서 여러 규제가 완화되면서 오히려 규제가 강화돼야 할 분야들의 규제가 덩달아 없어지는 문제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 이사장은 “비정규직 및 하청노동자들도 원청이 책임질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며 “경제 규제가 완화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노동자 보호·환경·안전 등 분야의 규제는 오히려 강화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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