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게 일할 수 있어 즐거워” 인생 2막에 웃는 실버 택배원

“바쁘게 일할 수 있어 즐거워” 인생 2막에 웃는 실버 택배원

김희리 기자
김희리 기자
입력 2017-01-26 17:08
업데이트 2017-01-26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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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 진입 어려운 곳 배송


전국 132곳 1000명 돌파
“동료는 또 다른 가족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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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서울 구로구 천왕동의 한 아파트 단지 실버택배원들이 단지에 도착한 택배 물품들을 배송하기 위해 아파트 동별로 분류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CJ대한통운 제공
지난 24일 서울 구로구 천왕동의 한 아파트 단지 실버택배원들이 단지에 도착한 택배 물품들을 배송하기 위해 아파트 동별로 분류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CJ대한통운 제공
“형님! 말 나온 김에 새해 목표가 뭔지나 좀 들어봅시다.”

“이 사람이 늙은이 놀리면 못 써. 우리 같은 노인네가 목표가 어딨어, 건강하게 일년 나면 성공이지.”

설 연휴를 사흘 앞둔 지난 24일 오후 서울 구로구 천왕동의 한 아파트 단지에 자리잡은 CJ대한통운 ‘실버택배’ 거점 사무실. 9명의 택배원이 웃으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이곳에는 모두 13명의 노인이 ‘실버택배원’으로 근무한다. 단지 내 13개 동 약 3000가구의 택배를 책임진다.

실버택배는 아파트 단지·전통시장 등 택배 물류차량이 진입하기 어려운 곳에 노인들이 물품을 배송하는 사업이다. CJ대한통운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실버택배원은 1000명을 돌파했다. 서울·경기·부산 등 전국에 132개의 거점 사무실이 있다.

이곳 천왕동 아파트 단지로 배송될 물량이 거점 사무실에 도착하면 동별로 물품을 분류한 뒤 담당 택배원들이 전동 자전거로 직접 실어 나른다. 통상 오후 2시면 물류 차량이 도착하지만 이날은 명절 직전이라 오후 3시가 넘어서야 분류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2015년부터 이곳에서 실버택배원으로 근무 중인 김봉근(75)씨는 “택배 차량이 늦게 오면 그만큼 퇴근도 늦어지지만 바쁘게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이 외려 즐겁다”며 활짝 웃었다.

팀장 백창현(81)씨는 이 아파트 단지 거주민이기도 하다. 막내아들 내외와 함께 살고 있다. 백씨는 “처음에는 행여나 가족들이 창피해하면 어떡하나 걱정도 했지만 활기가 넘친다고 응원해 줘서 고마웠다”면서 “주민들도 낯익은 이웃이 배달해 주니 더 안심이 된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철구(79)씨는 한국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 때 가족과 함께 만주로 강제 이주했다가 1991년 귀국해 지난한 법적 공방 끝에 1995년 국적 회복에 성공했다. 하지만 60을 바라보는 나이에 취업하기가 쉽지 않았다. 일용직 노동 등을 전전하다 2007년부터 지하철 노인택배원으로 근무했다. 그러다 알게 된 곳이 실버택배였다. “처음엔 지하철 택배랑 비슷한 일인 줄 알았는데 하늘과 땅 차이예요. 사람에 부대끼며 지하철 타고 배달 다니는 것보다 몸도 훨씬 편한 데다 동료들과 함께 일하니 마음도 든든하죠.”

아직 국적 취득을 못한 아내가 중국을 오가느라 외롭게 지내던 이씨에게 살가운 동료들은 새로운 가족이 돼 줬다. 얼마 전 전립선암 진단을 받고 투병 생활을 시작하자 동료들이 자진해서 업무를 분담해 주고 있다.

“인생 2막에 만나 힘든 시기를 격려해 주는 동료들이 또 다른 가족 같아요. 체력이 허락하는 한 일하는 보람을 느끼며 살고 싶습니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2017-01-27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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