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분이라도 더 살아계실 때” 4·3 해결 남은 과제들

“한 분이라도 더 살아계실 때” 4·3 해결 남은 과제들

입력 2017-03-31 10:55
업데이트 2017-03-31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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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70주년 목전…“희생자 배·보상, 수형인 명예회복 등 나서야”

“희생자 배·보상, 수형인 명예회복, 행방불명인 유해 발굴 등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과제가 아직 많이 남아있습니다.”

4·3희생자추념일을 2주가량 앞둔 지난 21일 제주도, 도의회, 도교육청, 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4·3평화재단 등 도내 기관·단체가 입을 모아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등 4·3 문제 해결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부탁하면서 한 말이다.

생존 희생자와 유족들 모두 고령인 점을 고려해 ‘한 분이라도 더 살아계실 때’ 남은 과제를 해결, 고통과 슬픔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지역사회의 여론이다.

4·3사건 70주년이 1년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아직도 해결을 기다리는 과제들을 정리해본다.

◇ “국가 공권력에 의한 피해…배상·보상으로 사죄해야”

4·3희생자유족회는 최근 대선 후보들에게 전달할 4·3 공약 4가지 중 1번으로 배상 및 보상을 꼽았다.

배·보상이 공권력에 의한 희생자들의 억울한 죽음과 유족들의 깊은 고통을 조금이나마 해소하기 위한 것인 만큼 고령인 생존 희생자와 유족들이 살아있을 때 이뤄져야 의미가 있어서 가장 시급한 문제로 꼽은 것이다.

4·3 특별법에는 피해자와 유족 배·보상에 대한 내용이 없다. 희생자·유족의 명예회복에 관한 사항, 희생자의 의료지원금·생활지원금 지급 결정에 관한 사항 등 간접적 보상방안이 일부 명기됐을 뿐이다.

현재는 희생자 유족 중 61세 이상 대상자 의료진료비, 생존 희생자 생계비·의료비·건강검진비·장제비, 유족 생계비, 희생자 며느리 진료비 정도만을 지원하고 있다.

배상과 보상은 차이가 있다. 배상은 국가가 위법행위로 개인에게 입힌 손해를 보전해주는 것, 보상은 적법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한 손실을 보전해주는 것으로 유족회와 4·3단체들은 배상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도의회 4·3특별위원회는 배·보상 방안에 대해 법적인 부분 등을 좀 더 보완해 대응 논리를 확보하고 특별법 개정이나 새로운 법 제정을 위한 국회 청원, 대정부 건의 등도 추진한다.

특위는 지난 30일 제4차 회의에서 ‘제주4·3사건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배·보상 및 신고 상설화 조속 마련’ 촉구 결의안을 채택했다. 특위는 결의안이 다음달 제350회 임시회 본회의에서 최종 채택되면 행정자치부와 국회 원내교섭단체 대표, 19대 대선 후보자 캠프 등에 전달할 계획이다.

유족회도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범국민위원회 등과 함께 배·보상 문제 해결을 중점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양윤경 4·3희생자유족회장은 “국가가 공권력에 의한 위법행위를 인정하고 뒤늦게나마 조금이라도 사죄하기 위해서는 배·보상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며 “국가가 저지른 범죄행위로 고통받는 분들이 일일이 소송하는 것은 부당하다. 국가가 일괄적으로 배·보상을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방법은 4·3특별법 개정, 4·3희생자 배·보상 특별법 제정 등이 거론된다.

양 회장은 “유족 중에선 자기 가족을 죽인 경찰을 용서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는 분도 있는데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라며 “생존 희생자, 유족분들이 이제 살 날이 많이 남지 않았다. 배·보상은 정말 시급한 문제”라고 재차 강조했다.

◇ “재판도 없이 억울한 옥살이” 수형인 피해자 명예회복 촉구

“자다가 이유도 모르고 끌려갔다. ‘폭도와 연계했냐’, ‘삐라 뿌렸냐’고 묻자 아니라고 했더니 계속 때렸다. 청소하는 아줌마가 경찰이 시키는 대로 말해야 산다고 해서 인정하니 도장 찍고 체포됐고, 인천형무소에 끌려가서 죄목도 없이 징역 5년 언도를 받았다.” (수형 피해자 현창용 할아버지)

지난 28일 열린 제주4·3 인천형무소 수형 희생자 실태조사 보고회 및 역사증언에서는 4·3 당시 이유도 모르고 끌려가 군사재판조차 받지 못한 채 억울한 옥살이를 할 수밖에 없었던 수형인 희생자들이 수십년간 품어온 아픈 이야기를 꺼내놨다.

현 할아버지는 자신이 고통받은 것은 물론 서울에서 대학을 나와서 법무부 합격 통보를 받은 딸이 출근을 앞두고 이유조차 듣지 못한 채 출근하지 말라는 전화를 받는 등 연좌제로 또 한번 억울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수형인 피해자들은 영문도 모른 채 군부대나 경찰관서에 끌려간 뒤 투옥돼 상당수가 사형 또는 행방불명됐다.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생존자들은 ‘빨갱이’라는 누명을 쓰고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왔고, 이들의 자녀들은 연좌제로 인해 공무원 임용 등에서 제약을 받아야 했다.

4·3 수형인은 1947년 3월 1일부터 1949년 7월까지만 하더라도 군사재판에 의한 수형인 2천530명, 일반재판에 의한 수형인 1천306명 등 3천8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행방불명되거나 기록이 불분명한 피해자들을 포함하면 실제 수는 이보다도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에는 ‘군법회의가 아예 없었다거나 적법 절차를 어긴 형식적인 재판이었다면 군법회의 대상자들을 수형인으로 호칭하는 것도 문제며, 형무소에 수감된 것도 불법 감금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런 내용 등을 바탕으로 수형인도 4·3 희생자로 결정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들은 여전히 ‘수형인 명부’에 등재돼 있는 데다 4·3특별법에는 이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조항이 규정되지 않은 실정이다.

이 때문에 4·3특별법을 개정해 수형인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배·보상할 길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수형인 생존자 17명은 다음달 재심 청구 소송과 재판 부존재 소송을 제기하기로 했다.

양동윤 4·3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 대표는 “특별법에 진상규명, 명예회복에 대한 내용이 규정돼 있지만 이 일을 해야 할 책임이 있는 그 누구도 해주지 않아 생존자분들이 직접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라며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피해 당사자들이기 때문에 (승소가) 수월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 “뒤늦게라도 가족 품으로” 유해 발굴·감식 시급

4·3특별법 제정 후 2006년 11월부터 2011년 2월까지 진행한 발굴을 통해 제주시 화북동, 제주국제공항 등 8곳에서 희생자 유해 400구가 발굴됐다.

이 가운데 신원이 확인된 시신은 지난해 확인된 3구를 포함해 총 92구에 불과하다.

308구는 70년이 다 되도록 가족 품으로 돌아가기는커녕 이름조차 찾지 못한 상태다.

오랜 기간 땅에 묻혀 있다가 발굴된 유해는 공기와 닿으며 산화, 훼손돼 DNA가 잘게 쪼개지는 등 시간이 흐를수록 확인이 어려워진다.

검사는 비교적 신원확인 가능성이 높은 유해와 유가족 혈액으로 DNA를 대조해 가족관계를 규명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기존의 기본적인 유전자 검사인 STR(short tandem repeat) 검사법으로는 유해 시료의 DNA가 잘게 쪼개져서 신원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최근 도입된 SNP(single nucleotide polymorphism) 검사법은 훼손된 DNA를 정밀 분석할 수 있어서 작은 유전자로도 검사가 가능하고 식별력이 높아서 형제 관계 등 2촌 관계 이상의 친족에 대한 신원확인도 가능하게 됐다.

문제는 예산이다. 유해 신원확인에 국비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나오지만 지난해까지 검사가 도비로 진행됐고, 올해는 국비 확보 과정에서 도 예산마저 확보되지 않아 제동이 걸렸다.

추가 발굴사업도 기약이 없다.

현재 행방불명인 유해가 집단으로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은 제주국제공항(정뜨르비행장) 일대다. 이곳에는 많게는 300여명까지도 있을 것이라는 추정이 나온다.

도 관계자는 “예산 문제도 있고, 제주공항은 중요시설이라서 발굴이 어렵기 때문에 기관 간 협의도 필요한 부분”이라며 “장기적으로 추진하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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