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촌 회원증’ 없어 라면 못 받은 동자동 쪽방촌 어르신

‘쪽방촌 회원증’ 없어 라면 못 받은 동자동 쪽방촌 어르신

최영권 기자
최영권 기자
입력 2020-12-17 17:10
업데이트 2020-12-17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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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구획상 밀집지역 아니라 발급 안했다”
코앞 나눔센터 두고 멀리 종합복지관 이용해야
매년 한파에 올해는 코로나 겹쳐 생활 이중고

서울 용산구에 있는 동자희망나눔센터에서 17일 주민들에게 컵라면 700상자와 내복 등을 나눠주고 있다.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서울 용산구에 있는 동자희망나눔센터에서 17일 주민들에게 컵라면 700상자와 내복 등을 나눠주고 있다.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낮 기온이 영하로 내려간 17일 서울 용산구 동자동 35-137 쪽방에 사는 이승언(75) 어르신은 동자희망나눔센터가 나눠주는 라면 한 박스를 받기 위해 줄을 섰지만 발길을 돌려야 했다. 서울시가 나눈 구획 상 어르신이 사는 집은 ‘쪽방촌’에 속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씨는 “동자희망나눔센터가 회원증을 받게 해주려고 노력했지만 서울시가 정해 둔 번지 수에서 살짝 비껴 나 있다며 회원증을 못 받게 됐다”고 설명했다.
동자희망나눔센터에서 걸어서 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이승언 씨의 집이 있었다. 이씨가 집을 향해 걷고 있는 모습.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동자희망나눔센터에서 걸어서 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이승언 씨의 집이 있었다. 이씨가 집을 향해 걷고 있는 모습.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역쪽방상담소가 지정한 쪽방밀집지역 내 있는 분들만 회원이 될 수 있다”며 “그외 쪽방 주민들은 찾동이나 종합사회복지관을 이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씨가 살고 있는 집은 동자희망나눔센터에서 걸어서 5분 거리였다.
이승언 씨가 1평 남짓한 쪽방에 앉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 임하고 있다.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이승언 씨가 1평 남짓한 쪽방에 앉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 임하고 있다.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이 씨를 따라 들어선 쪽방 바닥은 난방이 들어오지 않아 마치 얼음장 위에 서 있는듯 발가락이 시려웠다. 중앙난방 방식이라 주인집에서 난방을 켜줘야 하지만 잘 때주지 않는다고 했다. 쪽방의 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책이 쌓인 공간을 제외하면 한 사람이 겨우 한 몸 누일 공간만 남았다. 지난달 1일에는 길거리에서 심장병으로 쓰러져 깨어나보니 강북삼성병원 응급실이었다고도 했다.

1인 기초생활수급자 가구로 선정돼 국가에서 월 65만원을 받는 이씨는 월세를 주고 남는 돈으로 생활한다. 끼니는 동사무소에서 받은 쌀을 아껴서 먹으며 해결한다. 얼마 전부터 인근 무료급식소는 노숙인들만 이용할 수 있게 바뀌면서 갈 수 없어졌다.
이승언(75)씨가 살고 있는 서울시 용산구 동자동 쪽방 공용샤워실. 2층에 있는 쪽방 거주민들이 이 곳을 공동으로 이용한다. 겨울에는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아 거의 씻지 못한다고 했다.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이승언(75)씨가 살고 있는 서울시 용산구 동자동 쪽방 공용샤워실. 2층에 있는 쪽방 거주민들이 이 곳을 공동으로 이용한다. 겨울에는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아 거의 씻지 못한다고 했다.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겨울철에는 씻기도 힘든 환경이다. 평소에는 공동화장실에서 용변을 보고 공동샤워장에서 몸을 씻지만 겨울에는 냉수만 나와 샤워를 거의 할 수 없다고 했다.
16일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에서 바라본 건너편 고급 브랜드 아파트들. 구룡마을 길 건너편에는 시세가 30억이 넘는 브랜드 아파트가 늘어 서 있다.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16일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에서 바라본 건너편 고급 브랜드 아파트들. 구룡마을 길 건너편에는 시세가 30억이 넘는 브랜드 아파트가 늘어 서 있다.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구룡마을’ 널빤지 벽 사이에 두고 다닥다닥
감염 우려에도 마스크 한장으로 버틴 적도

16일 밤 9시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의 쪽방촌에 사는 모녀는 방 안에서도 옷을 껴입고 전기 난로에 의지해 추위를 견디고 있었다. 모녀는 난방비를 아끼려 가스보일러 대신 복지 단체에서 후원 받은 연탄으로 난방을 하고 있다. 어머니 박모(71)씨는 “올해는 아직 후원이 들어오지 않아 지난해 받은 연탄으로 난방을 하고 있다”며 “아침과 밤에 2장씩 하루에 총 4장을 사용한다”고 했다.
개포동 구룡마을의 한 집에서 연탄 보일러를 떼고 있는 모습.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개포동 구룡마을의 한 집에서 연탄 보일러를 떼고 있는 모습.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600여 세대가 낡은 널빤지 하나를 벽으로 놓고 따닥따닥 붙어 사는 쪽방촌은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말한 ‘코로나19가 좋아하는 3밀(밀폐, 밀접, 밀집)’의 조건을 완전히 충족하고 있었다.

어머니 박씨는 1차 대유행 당시 마스크를 구할 수 없어 발만 동동 굴렀다고 했다. 그는 “동사무소에서 주는 마스크 한 장으로 일주일을 버텼다”며 “마스크를 구하기 힘들어 빨아 쓰고 그랬다”고 했다.

구룡마을 입구에서 만난 안봉태(58)씨가 살고 있는 집 앞뒤양옆에는 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코로나19 감염 우려가 걱정되지 않냐’는 질문에 안 씨는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했다.

1998년 IMF 외환위기 때 운영하던 기업체들이 연쇄 부도가 나면서 구룡마을에 흘러 들어오게 됐다. 밤낮으로 건설 현장 일용직으로 일하는 안씨의 수입은 더 줄었다. 이날도 안씨는 밤 8시쯤 집을 빠져 나와 일터로 향하고 있었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에서 살고 있는 송씨가 순간온수기에 불을 떼고 있다. 이곳에 살고 있는 모녀는 프로판 가스가 일요일에 떨어지면 연탄불에 물을 끓여 몸을 씻는다고 했다.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에서 살고 있는 송씨가 순간온수기에 불을 떼고 있다. 이곳에 살고 있는 모녀는 프로판 가스가 일요일에 떨어지면 연탄불에 물을 끓여 몸을 씻는다고 했다.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서울 강남 한복판이지만 구룡마을에는 배달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딸 송모(51)씨는 “코로나19 때문에 밖에 나가질 못하니 배달 음식을 한번 시켜먹으려 해도 마을 입구까지만 오겠다고 한다”고 했다.

박승민 동자동 사랑방 활동가는 “지난 9월말쯤 동자동에 2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와 확진자와 접촉한 분들이 자가 격리 권고를 받은 일이 있었다”며 “쪽방촌 주민들은 자가 격리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환경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 당국에서 자가격리만 권고했을 뿐 자가 격리를 할 수 없는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대책은 전혀 없는 게 아쉽다”고 했다.

서울시는 이날 “거리노숙인, 쪽방주민들을 위한 ‘겨울철 특별보호대책’을 가동해 취약계층의 안전을 지키겠다”고 밝혔다.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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