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확진받자 활동지원 뚝 끊긴 중증장애인들…“생명권 위협”

코로나 확진받자 활동지원 뚝 끊긴 중증장애인들…“생명권 위협”

오세진 기자
입력 2020-12-17 20:27
업데이트 2020-12-17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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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와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등 장애인 단체들이 17일 오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의 최용기 회장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와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등 장애인 단체들이 17일 오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의 최용기 회장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중증장애로 혼자 생활하기 어려워 활동지원사의 지원을 받고 있는 장애인들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병원에 입원하면 더 이상 활동지원사의 지원을 받을 수가 없어 장애인의 생명권이 위협받고 있다. 장애인 단체들은 장애 유형과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 지금의 비장애인 중심의 방역체계에서는 장애인들이 배제될 수밖에 없다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와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등 장애인 단체들은 17일 오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중증장애인 2명은 중증장애인에 대한 생활지원이 가능한 병상이 없어 매우 심각한 위험에 놓여 있다”면서 인권위에 긴급구제를 요청했다.

인권위는 조사대상 사건의 피해자에 대한 인권침해나 차별행위가 계속되고 있다는 상당한 개연성이 있고, 이를 방치할 경우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하면 의료, 급식, 의복 등의 제공 및 피해자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필요한 사항 등을 조치하도록 권고할 수 있다.

서울에 사는 와상 중증장애인 정모(41)씨는 전날 오전 9시쯤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정씨는 기저질환이 있어 코로나19 중중환자로 분류됐다. 하지만 입원할 병상이 없어 정씨는 자택에서 대기 중이다.

그런데 전날 정씨의 활동을 보조한 활동지원사와 정씨의 배우자가 접촉자로 분류돼 자가격리되면서 정씨는 홀로 방치됐다. 정씨가 사회서비스원에 연락해 긴급활동지원을 요청했지만 코로나19 확진자에게는 지원할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정씨는 관할 보건소에 문제를 제기했고, 보건소는 정씨의 배우자에게 방호복을 지급해 정씨에 대한 활동보조를 가능하도록 했다. 정씨의 배우자가 정씨 집에 도착한 시간은 전날 오후 9시 30분쯤. 정씨는 그 전까지 약 12시간 동안 식사는커녕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했다.

병상을 배정받아도 문제다. 병원에서는 정씨에 대한 활동지원인력을 배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정씨는 “병원에 가면 저는 양치질도 못 하고, 세면도 못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서 “엄연히 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가 있는데도 이용할 수 없는 현실은 불합리하다”라고 말했다.

경북 포항에 사는 중증 뇌병변장애인 이모(39)씨도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 이씨는 지난 14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사설 구급차를 타고 다른 지역에 있는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씨는 뇌병변장애로 왼쪽 팔과 다리를 사용할 수 없어 활동지원사 없이 걷거나 몸의 균형을 잡는 일이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씨는 이송 과정에서 활동지원사 없이 홀로 2시간 거리를 이동했다. 이씨의 배우자는 “이씨가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니 활동지원사가 꼭 붙어야 한다고 보건소 직원에게 수차례 부탁했지만 소용 없었다”고 말했다.

병원은 이씨에게 돌봄인력을 지원하지 않고 이씨와 같은 병실에 있는 확진자들에게 이씨의 생활지원을 맡길 뿐이었다. 이후 이씨의 배우자는 병원으로부터 “이씨가 혼자서 신변처리가 불가능하고 사람이 없을 때 복도로 나가서 폐쇄회로(CC)TV가 없었다면 큰 사고가 났을 수도 있다”며 “이렇게 통제가 안 되면 신경안정제를 투입하거나 팔다리를 묶는 수밖에 없다”는 말을 들었다. 이씨의 배우자는 눈물을 쏟았다.

장애인 단체들은 “코로나19가 국내에서 발생한 지 1년이 다 되어가고 있다. 코로나19 감염 발생 초기부터 장애인 당사자들은 여러 차례 장애 유형에 따른 지원체계 마련을 요청했다”면서 “현재의 비장애인 중심의 방역체계는 장애인이 자가격리나 확진 상황을 맞이했을 때 전혀 대응을 하지 못해 장애인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인권위가 시정 권고를 통해 더 이상 코로나19 방역체계에서 장애인이 배제되지 않도록 피진정인들(보건복지부, 질병관리청, 서울시, 경북도, 포항시)이 빠른 대책을 마련하고 시행하도록 해줄 것을 요청한다”고 덧붙였다.

글·사진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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