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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 굴뚝엔 47년간 추억 모락… 할머니의 동네 기록한 22세 손녀

목욕탕 굴뚝엔 47년간 추억 모락… 할머니의 동네 기록한 22세 손녀

손지민 기자
입력 2021-01-06 20:10
업데이트 2021-01-07 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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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수빈씨 ‘인천 주안 4동 아카이브집’

“재개발되기 전에 우리집 모습 남겨줘”
할머니 말에 책 만드는 프로젝트 시작

1970~80년대 기와·간판 등 매력 담아
“각기 색다른 단독주택 대문 예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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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47년간 살았던 동네에 재개발이 시작되자 이를 기록한 ‘주안 4동 아카이브집’을 낸 채수빈씨. 본인 제공
할머니가 47년간 살았던 동네에 재개발이 시작되자 이를 기록한 ‘주안 4동 아카이브집’을 낸 채수빈씨.
본인 제공
붉은 벽돌집, 기와지붕, 연기가 나오는 목욕탕 굴뚝. 대학생 채수빈(22)씨가 카메라에 담은 할머니의 동네, 인천 미추홀구 주안4동의 모습이다. 채씨의 할머니가 47년간 살아온 주안4동은 현재 본격적인 재개발이 진행 중이다. 채씨는 재개발로 사라지는 옛 동네의 마지막 모습을 글과 사진으로 기록 중이다.

“‘여기 다 무너지기 전에 카메라로 우리 집 모양이라도 담아 줘’라고 할머니께서 말씀하시더군요. 지나가듯 하신 말씀이지만 저에겐 왠지 책임감처럼 남아 있어요.”

채씨는 6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기록을 시작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채씨는 주안4동의 마지막 모습과 동네 주민들의 인터뷰를 담아 책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채씨가 이 동네의 매력을 발견하게 된 것은 코로나19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다. 20년 넘게 인근 신도시에서 살던 채씨의 가족은 2년 전 할머니가 사는 주안4동으로 이사 왔다. 학교와 아르바이트를 오가며 살던 채씨에게 집은 ‘잠만 자는 곳’이었다.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되고 모든 활동이 비대면이 되면서 다른 지역으로 나갈 일이 줄어들었다. 그때 채씨의 눈에 동네의 정겨운 모습이 들어왔다.

채씨는 가게 간판과 집의 기와지붕, 대문, 차고지 네 가지 소재로 동네의 매력을 풀어냈다. 1970~1980년대 주택문화가 담긴 오래된 평범함이 주안4동의 특징이라고 생각해서다. 아파트에서 나고 자란 채씨의 눈에는 가장 새롭고 예쁘게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했다. 채씨는 “지금은 어디를 가나 다 아파트여서 그런지 각자 다른 빛과 색을 지닌 단독주택의 대문들이 예뻐 보였다”고 말했다.

재개발 지역도 기록에서 빼놓을 수 없었다. 채씨는 지난 추석 동네에 붙은 재개발 안내 현수막을 보고, 말로만 듣던 재개발이 코앞까지 다가온 것을 느꼈다. 재개발 지역이 완전히 통제되기 전 카메라를 들고 찾아간 채씨는 잘린 대문과 눕혀진 벽돌기둥을 발견했다. 사람들이 살던 곳에는 고양이만 남아 자리를 지켰다.

프로젝트를 가장 환영했던 사람은 아버지였다. 이 동네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아버지는 채씨에게 “내가 할 일을 딸이 대신해 주는 것 같아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주안4동에서 추억을 쌓아 온 사람들도 감사를 전해 왔다. 채씨 책의 크라우드펀딩에 참여한 한 네티즌은 “이 동네에서 오래 살았는데, 내가 살던 집은 이미 재개발이 시작돼 옆 동네로 이사 가게 됐다. 나 대신 주안4동의 추억을 기록해 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채씨는 “주안4동을 각자의 추억이 담긴 곳으로 기억해 준다면 감사할 것 같다”면서 “이 동네에 있었던 여러 가지 가게들과 풍경 등 각자의 추억들이 이 책을 통해 상기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2021-01-07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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