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 1년, 일상이 된 물부족…설거지 물 아끼려 급식 메뉴도 바뀌었다

가뭄 1년, 일상이 된 물부족…설거지 물 아끼려 급식 메뉴도 바뀌었다

김정화 기자
입력 2023-03-12 18:55
업데이트 2023-03-13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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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남부 지역 50년 만에 최악의 가뭄
완도 노화도·통영 욕지도 직접 가보니
집집 ‘물탱크’ 필수, 펜션은 ‘물 동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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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경남 통영 욕지도에 위치한 원량초에서 이조연화(12)·정소영(12) 학생이 양치질컵에 물을 받아 양치질을 하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해 광주·전남과 부산·울산·경남의 가뭄 일수는 각각 281.3일, 249.5일이었다. 1973년 기상 관측을 시작한 이래 가장 길다.
지난 10일 경남 통영 욕지도에 위치한 원량초에서 이조연화(12)·정소영(12) 학생이 양치질컵에 물을 받아 양치질을 하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해 광주·전남과 부산·울산·경남의 가뭄 일수는 각각 281.3일, 249.5일이었다. 1973년 기상 관측을 시작한 이래 가장 길다.
지난 10일 전남 완도군 노화도의 노화중앙초등학교. 1교시 수업 후 마신 200㎖ 우유 팩을 씻으러 화장실에 간 1학년 학생 2명이 “물을 너무 많이 쓴다”며 옥신각신했다. 이승민(7·익명)군이 실수로 수도꼭지를 틀어 우유 팩이 넘칠 정도로 많은 물을 흘려보내자, 김주영(7·익명)군이 “선생님이 물을 1초만 따르고, 대신 많이 흔들어서 헹구라고 하지 않았냐”고 타박했다.

남부 지역을 덮친 50년 만에 최악의 가뭄은 아이들의 일상도 흔들었다. 먹고 마시고 씻는 것조차 여의찮은 이곳에서 아이들은 손바닥만 한 우유 팩 하나를 헹굴 때도 조심하는 ‘생존 방식’을 익히고 있었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해 광주·전남과 부산·울산·경남의 가뭄 일수는 각각 281.3일, 249.5일이었다. 1973년 기상 관측을 시작한 이래 가장 길다. 올 1월 비가 조금 내리면서 가뭄이 해갈되는 듯했지만, 다시 일 강수량이 0.1㎜ 미만인 날이 늘어나며 모든 것이 말라붙고 있었다.

완도에서도 40분 정도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노화도는 최근 ‘2일 급수, 4일 단수’에서 ‘2일 급수, 6일 단수’로 단수일을 더 늘렸다. 이 지역 수원지의 저수율은 1.97%에 그친다. 이곳뿐 아니라 완도 금일, 보길, 소안 등 다른 섬들도 수원지 저수율은 4~7%대라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완도지역의 지난해 총강수량은 765㎜로 평년 대비 53%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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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찾은 전남 완도 노화도의 한 건물 앞에 3t 짜리 물탱크가 설치돼 있다. 완도 노화읍에서는 최근 ‘2일 급수, 4일 단수’에서 ‘2일 급수, 6일 단수’로 단수일을 늘리면서 주민들의 불편함도 커졌다.
지난 9일 찾은 전남 완도 노화도의 한 건물 앞에 3t 짜리 물탱크가 설치돼 있다. 완도 노화읍에서는 최근 ‘2일 급수, 4일 단수’에서 ‘2일 급수, 6일 단수’로 단수일을 늘리면서 주민들의 불편함도 커졌다.
노화도 길거리에는 3t짜리 파란색 물탱크가 놓여 있다. 급수 기간 이곳에 물을 채워놓고 6일 동안 써야 한다. 주민 김경미(63)씨는 “목욕과 빨래는 급수 기간에만 하고, 2~3번 일을 보고 모아서 변기 물을 내린다”며 “채소 헹군 물이나 세수한 물은 모아뒀다가 화장실 청소할 때 쓴다”고 전했다. 또 다른 주민 김모(57)씨는 “몸도 2~3일에 한 번씩밖에 못 씻는데, 빨래는 엄두를 내지 못한다”면서 “이런 가뭄은 평생 처음”이라고 했다.

노화중앙초에서도 물탱크가 ‘생명수’나 다름없다. 본관, 급식실, 교직원 관사를 포함해 총 80t의 물을 저장해 쓰고 있지만, 사흘이면 20t짜리 물탱크 하나가 동난다. 학교 식당 앞 음수대 수도꼭지는 사용하지 않은 지 오래돼 녹슬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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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전남 완도 노화도에 있는 노화중앙초 음수대에 붙어 있는 포스터. 아이들이 직접 그린 이 포스터에는 ‘밖에는 비가 철철 내리네’, ‘단수는 안돼’ 같은 말이 쓰여 있다.
지난 9일 전남 완도 노화도에 있는 노화중앙초 음수대에 붙어 있는 포스터. 아이들이 직접 그린 이 포스터에는 ‘밖에는 비가 철철 내리네’, ‘단수는 안돼’ 같은 말이 쓰여 있다.
가뭄은 아이들에게서 교육과 놀이의 기회까지 앗아갔다. 신연심 교장은 “지난해 교내에서 실시하려던 물놀이 계획을 취소했고, 꾸준히 많은 물을 줘야 하는 텃밭 가꾸기 교육도 힘들어졌다”고 전했다.

긴 가뭄은 학교의 급식 메뉴마저 바꿨다. 노화중앙초는 돈가스나 새우튀김처럼 기름기가 많은 음식은 설거지할 때 물 사용이 많아 제공 횟수를 줄였다. 대신 오이부추겉절이, 야채비빔국수, 다시마무침와 같은 메뉴가 자리를 메웠다. 설거지할 때 쓰는 물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는 방법이다. 아이들은 이를 닦을 때는 개인 양치 컵에 한 번만 물을 담아 입을 헹궜고, 교실과 복도 바닥을 청소할 때도 물을 뿌리지 않고 걸레질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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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완도 노화도의 노화중앙초에서 1학년생 이주헌군이 우유를 마신 뒤 화장실에서 우유팩을 씻고 있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우유팩 하나를 씻을 때도 최대한 물을 아껴쓰는 게 몸에 습관으로 배었다.
전남 완도 노화도의 노화중앙초에서 1학년생 이주헌군이 우유를 마신 뒤 화장실에서 우유팩을 씻고 있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우유팩 하나를 씻을 때도 최대한 물을 아껴쓰는 게 몸에 습관으로 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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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전남 완도 노화도에서 만난 주민 김경미씨가 채소를 헹구고 있는 모습. 김씨는 “채소 씻은 물도 함부로 버리지 않고 화장실 청소에 쓴다”고 설명했다.
지난 9일 전남 완도 노화도에서 만난 주민 김경미씨가 채소를 헹구고 있는 모습. 김씨는 “채소 씻은 물도 함부로 버리지 않고 화장실 청소에 쓴다”고 설명했다.


경남 통영시에서 배로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욕지도에서는 민박이나 펜션처럼 물 사용량이 많은 곳을 운영하는 주민들이 다른 지역으로 ‘물 동냥’을 다닌다. 2t 물탱크를 트럭에 싣고 다니면서 물이 조금 더 넉넉한 동네에서 돈을 주고 물을 산다. 한상봉 욕지도 주민자치위원장은 “면사무소에서 농수로 저장해놓은 물을 받아 가기도 하고, 육지로 나가 물을 실어 오기도 한다”고 했다.

‘물이 많은 섬’으로 유명한 욕지도도 최악의 가뭄을 피해가지 못하면서 욕지댐 저수율은 36.6%로 떨어졌다. 주민 강성근씨는 “이웃집 98세 어르신이 ‘살면서 거기(욕지댐) 물이 마른 걸 처음 본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그나마 지하수가 나오는 지역은 사정이 낫지만, 그렇지 않은 지역은 단수 기간이 괴롭다. 욕지중학교 교사인 김현주씨는 “매일 단체 메신저 방에서 단수 관련 공지가 내려온다”며 “목욕과 관사 청소는 포기한 지 오래”라고 전했다. 다른 지역에서 온 교사들은 평일에 빨랫감을 모아뒀다가 주말에 육지에 있는 본가로 가 빨래감을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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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방문한 경남 통영 욕지도에서도 욕지댐 저수율이 30%대로 떨어지는 등 단수로 인한 어려움이 작지 않았다. 사진은 욕지중 교사들에게 매일 제한 급수 관련 내용이 휴대폰 단체메신저를 통해 공지되는 모습.
지난 10일 방문한 경남 통영 욕지도에서도 욕지댐 저수율이 30%대로 떨어지는 등 단수로 인한 어려움이 작지 않았다. 사진은 욕지중 교사들에게 매일 제한 급수 관련 내용이 휴대폰 단체메신저를 통해 공지되는 모습.
이틀에 한 번 물이 나오는 욕지도의 사정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노대도 하리 마을은 최근 지하수까지 말라붙어 시청과 주민센터 등에서 긴급 지원을 나가기도 했다. 욕지면사무소 관계자는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가 눈곱만 떼고, 변기 물이 안 내려가 어려움을 겪는 주민들이 많다”고 전했다.

가뭄은 국내 최대 호남평야도 위협하고 있다. 전북의 주요 식수원이자 농업용수 공급원인 섬진강댐의 저수율은 이날 기준 19.2%로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지난 1일 개장한 옥정호 출렁다리와 운암대교는 물속에 잠겨있어야 할 교각이 흉물스럽게 드러나기도 했다.

한국수자원공사 섬진강댐지사는 다음달 중순부터 호남평야 중심부에 농업용수 공급을 시작해야 하지만 걱정이 앞선다. 김제·부안지역 논 3만 3000㏊에 용수를 공급하기 시작하면 강물이 완전히 마를 수밖에 없어서다. 가뭄이 계속되면 오는 6월부터는 댐 기능을 상실해 모든 용수 공급을 중단해야 한다.
글·사진 완도·통영 김정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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