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영병 이야기] <下>국가가 왜 감염병 관리하나

[감영병 이야기] <下>국가가 왜 감염병 관리하나

이현정 기자
이현정 기자
입력 2016-03-06 18:08
업데이트 2016-03-07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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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운 가른 바이러스…국력 기른 예방 접종

지금은 항생제로 치료할 수 있지만, 14세기만 해도 페스트는 유럽 인구 3분의1을 죽음으로 내몰아 결국 중세 유럽을 몰락시킨 무서운 질병이었다. 고대 로마는 말라리아로 군사력과 생산력을 잃어 쇠퇴했고, 아테네도 홍역으로 추정되는 괴질을 앓다 스파르타의 침공으로 그리스 맹주 자리를 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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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네덜란드의 과학자 베이에링크가 바이러스의 존재를 최초로 인지하기 전까지 알 수 없는 병원균과 맨몸으로 맞서야 했던 인류에게 감염병은 많은 영향을 미쳤다. 때로는 페스트와 홍역처럼 한 국가의 운명과 인류 역사를 송두리째 바꾸기도 했다.

●감염병과 국가의 흥망성쇠는 연결

사망 원인 2~3위를 다투는 질환이 심혈관계 질환인데도 ‘심혈관계 질환 예방법’은 없는 반면 ‘감염병예방법’은 있는 것이 이런 이유에서다. 감염병은 거의 모든 나라에서 정부가 관리하고 있다. 심혈관계 질환은 개인의 삶에만 영향을 미치지만, 감염병 관리는 국가의 흥망성쇠와 직접 연계되기 때문이다.

유럽인들이 원주민을 손쉽게 밀어내고 아메리카 대륙을 차지할 수 있었던 요인도 감염병이었다. 1519년 스페인군 600명이 멕시코를 점령했을 때만 해도 멕시코 원주민 인구는 3000만명이었으나 1568년엔 300만명으로 대폭 줄었고 1620년엔 160만명이 됐다. 스페인군이 옮긴 질병 ‘두창’이 원인이었다. 유럽인들은 오랜 세월 두창을 앓아 내성이 생겼지만, 처음 접한 원주민들에게 두창은 치명적인 ‘신종 감염병’이었다.

나폴레옹이 러시아 원정에서 실패한 원인은 기근과 추위 때문으로 알려졌지만, ‘발진티푸스’라는 감염병이 러시아 정복에 나선 나폴레옹군을 몰살시켰다는 설도 있다. 군대가 지나는 곳마다 발진티푸스가 유행했고, 결국 60만명의 나폴레옹 군사 중 4만명만 살아 돌아왔다.

감염병을 잘 관리한 국가는 항상 유리한 고지를 차지했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전 세계 최초로 모든 군인을 대상으로 예방접종을 시행해 감염병으로부터 무사할 수 있었고, 미국은 황열 덕에 파나마 운하를 얻을 수 있었다.

황열은 모기가 전파하는 감염병으로, 걸리면 얼굴이 노래지고 열이 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태평양과 카리브해를 연결하는 파나마 운하 공사는 프랑스가 착수했으나 풍토병인 황열을 이기지 못해 포기했다. 바통을 이어받은 미국은 풍토병을 먼저 정복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세균학자이자 군의관인 월터 리드를 중심으로 황열 연구에 나섰고 결국 모기가 황열을 옮긴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미국은 대대적인 모기 박멸 사업을 진행해 황열을 해결했고, 파나마 운하를 군사·외교·경제적으로 이용해 세력을 확장했다.

●메르스로 인한 경제손실 6조여원

굳이 옛 이야기를 꺼내지 않더라도 지난해 우리나라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해 엄청난 사회·경제적 손실을 보았다. 정부 추산 경제적 손실액만 6조 3627억원에 이른다.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때는 국내에서 환자가 거의 발생하지 않았는데도 주변국 사스 유행의 영향으로 국내총생산(GDP)이 0.5% 감소했다. 홍콩은 GDP의 4%, 중국 본토는 0.5%가 줄었다. 사스 환자 8098명 가운데 사망자는 774명뿐이지만, 아시아가 사스로 입은 피해는 2004년 인도양 쓰나미로 28만명이 사망했을 때보다 컸다. 감염병 국제 공조가 필요한 이유다.

신종 감염병 출현 요인은 현대로 올수록 다양해지고 있으며, 출현 시 예상되는 피해는 과거보다 크다. 특히 인수공통감염병은 인간에게 더 치명적일 수 있어 출현과 변화를 예측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병원체의 감염 경로를 조기에 파악하지 못하면 감염병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며, 이런 상황에서 위험 소통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위기 상황으로 발전한다. 그래서 감염병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문제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2016-03-07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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