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규 기자의 광저우 아침] 한국 체육계 ‘구타의 진실’

[박창규 기자의 광저우 아침] 한국 체육계 ‘구타의 진실’

입력 2010-11-25 00:00
수정 2010-11-25 00:58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대개 진실 공방은 사실관계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한쪽은 특정 사실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다른 쪽은 당연히 아니라고 한다. 간단한 구조다.

가령 구타 사건이 일어났다고 가정해 보자. 가장 큰 쟁점은 정말 때렸느냐, 안 때렸느냐다. “네가 때렸잖아.”, “나는 안 때렸다.”, “너 정말 이럴래.” 주장은 엇갈리게 마련이다. 어느 쪽 주장이 맞는지 알아보려면 사실관계를 확정해야 한다. 다양한 방법이 있을 거다. 가해자의 손과 발, 피해자의 상처 부위를 조사한다. 두 사람의 정황 설명에 대한 정확성도 참고 요소가 된다. 목격자가 있다면 증언도 들어야 한다.

상황은 다양하다. 많이 때렸느냐, 적게 때렸느냐, 강하게 때렸느냐, 약하게 때렸느냐, 주먹으로 쳤느냐, 발로 찼느냐. 매번 진술과 설명은 평행선을 그리고 따로 논다. 그러나 공방의 구조는 비슷하다. 결국 사실관계를 확정 짓기 위한 싸움이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특정인이 다른 사람을 때린 걸 너도 알고, 나도 알고, 다 아는데 그게 구타인지 아닌지 판단을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사실관계에는 의문이 없다. 한쪽은 때렸고 다른 쪽은 맞았다. 그걸 본 주변인들이 깜짝 놀랄 정도였다. 때린 사람도 사실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았다. 경기 임원에 기자, 상대 선수들까지 여러 사람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일어난 일에 대한 증언은 대체로 일치했다.

지난 22일 있었던 아시안게임 볼링 구타 논란 얘기다. 볼링 대표팀 강도인 감독은 광저우 톈허 볼링장에서 장동철의 양 뺨을 때리고 발로 차는 행위를 했다. 사실관계는 여기까지다. 그러나 이게 구타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데는 꼬박 하루 이상이 걸렸다.

결론적으로 대한체육회는 24일 구타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경기 도중 집중력을 높이기 위한 신체접촉이었다. 감정적이고 의도적인 폭력 행위라고 보기 힘들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격한 용어를 사용한 점은 인정되며 선수 지도 방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감독에게 엄중 경고 징계 조치를 했다.”고 덧붙였다.

사실 구타의 사전적 정의는 ‘사람을 함부로 때리는 것’이다. 사실관계만으로 보면 강 감독의 행위는 이미 구타다. 다 큰 어른을 공공장소에서 때렸다. 그러나 한국 체육계에서 구타는 좀 다른 의미다. 사실판단 영역이 아니라 가치판단 영역에 해당한다. 때리더라도 ‘감정이 없고 의도적이지 않으면’ 구타가 아니다. 정신 차리라고, 힘내라고, 분발하라고 때리는 건 ‘지도 방식’이다. 조금 개선이 필요할 뿐이다. 그래서 판단이 어렵다. 홍길동은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한다. 한국 체육계에선 사람 때린 걸 구타라고 부르지 못한다.

때리는 행위 자체가 워낙 만연해 있어서 그렇다. 때리더라도 이게 지도 방식인지 구타인지 구분할 필요가 있을 정도인 거다. 프로야구 롯데 신임 양승호 감독은 고려대 감독 시절 구타를 없앤 첫 지도자로 유명했다. 그게 불과 2년 전 일이다. 이게 한국 엘리트 체육의 현실이다. 과정보다는 결과가 중요한.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2010-11-25 29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사법고시'의 부활...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달 한 공식석상에서 로스쿨 제도와 관련해 ”법조인 양성 루트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과거제가 아니고 음서제가 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실질적으로 사법고시 부활에 공감한다는 의견을 낸 것인데요. 2017년도에 폐지된 사법고시의 부활에 대해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1. 부활하는 것이 맞다.
2. 부활돼서는 안된다.
3. 로스쿨 제도에 대한 개편정도가 적당하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