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죽음에 대한 선험적 생각이 시인의 감수성”

입력 : ㅣ 수정 : 2019-06-26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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亞 여성 최초 ‘그리핀상’ 김혜순 시인
김혜순 시인.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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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순 시인.
연합뉴스

“시상식장, 낭독회장에 관객 1000여명이 있었는데 모두 백인들이었어요. 번역자와 저만 아시아인이었기 때문에 전혀 예상을 못했습니다. 제 이름을 불렀을 때 너무 놀라서….”

25일 서울 중구 한 식당에서 기자들과 만난 김혜순(64) 시인은 수상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김 시인은 지난 6일(현지시간) 아시아 여성 최초로 캐나다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그리핀 시 문학상’을 받았다. 시집을 영역한 최돈미(57) 시인과 함께였다.

수상작인 ‘죽음의 자서전’(문학실험실)은 2015년, 온몸이 감전되는 듯한 ‘삼차신경통’을 앓았던 시인이 세월호 참사 같은 사회적 죽음 속에서 써내려 간 49편의 시를 모은 책이다. 그는 “시라는 것, 시인의 감수성이라는 것은 소멸과 죽음에 대한 선험적인 생각이라고 본다”면서 자신의 시집을 “죽은 자의 죽음을 쓴 것이라기보다는 산 자로서의 죽음을 쓴 것”이라고 했다. “아마 심사위원들도 그런 상황들이 있었으니까, 그런 시적 감수성이 그들에게 닿지 않았을까”라고 조심스럽게 소감을 던졌다.

49편 중 시인은 ‘저녁메뉴’라는 시가 가장 아프다고 했다. “그 시에는 엄마라는 단어가 많이 나와서요.” 수상 소감에서도 어머니를 언급했던 시인은 며칠 전, 모친상을 당했다.

‘한국 시의 최전선’이라 불리는 시인은 페미니즘 담론이 나오기 이전부터 여성의 목소리에 천착해 시를 썼다. 그는 여성들의 몸짓을 얘기할 때 ‘시하다’, ‘새하다’처럼 ‘하다’라는 동사를 붙인 신조어를 만들어 썼다. 그는 “관념과 사물을 동일시하는 유사성의 원리보다, 여성들이 시 안에서 움직이고 말하는 걸 많이 봐 왔다”며 “‘되다’라는 은유에서 느껴지는 폭력적인 힘을 거부하는 의미에서 ‘하다’라는 용어를 쓰게 됐다”고 말했다.

1979년 계간 ‘문학과지성’을 통해 등단한 시인은 올해 시력 40년을 맞았다. 그간의 소회를 묻자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시인은 “여러분이나 저나 당면한 오늘을 바라보고, 당면한 한국 사회 문제들 속에서 사유하게 돌아볼 시간은 많지 않다”고 에둘러 답했다. 돌아볼 시간조차 아까운 시인은 새달 초 신작 산문집 ‘여자짐승아시아하기’(문학과지성사)를 출간한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2019-06-26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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