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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쓰나미로 떠난 사랑하는 이에게 전화, 바람만이 답할 뿐

10년 전 쓰나미로 떠난 사랑하는 이에게 전화, 바람만이 답할 뿐

임병선 기자
입력 2021-03-05 16:57
업데이트 2021-03-05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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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나야 여보. 거긴 어때?”

“ ”

바람 소리만 들린다. 애초에 전화선도 연결 안돼 있어 답을 들을 수 있다고 전화를 건 것이 아니다. 그저 다른 누구의 눈치도 살피지 않고 하늘로 떠난 지 10년이 된 아내에게 웅숭깊은 얘기를 털어놓고 마음껏 울고 그리워할 수 있어서다.

일본 이와테현 오츠치 마을의 구지라 산 중턱 벚나무 정원 가운데 흰색 공중전화 부스가 놓여 있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지진해일)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이 참사 10주기를 맞아 못다한 얘기를 실컷 해보라고 지난달 27일 첫 선을 보인, 이른바 ‘가제 노 덴와’(바람의 전화)다.
10년 전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에 사랑하는 아내 미와코를 잃은 사사키 가즈요시가 지난달 27일 이와테현 오츠치 마을의 구지라 산 중턱 벚나무 정원 가운데 공중전화 부스 안에 들어가 아내와 바람의 통화를 하며 슬퍼하고 있다. 오츠치 로이터 연합뉴스
10년 전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에 사랑하는 아내 미와코를 잃은 사사키 가즈요시가 지난달 27일 이와테현 오츠치 마을의 구지라 산 중턱 벚나무 정원 가운데 공중전화 부스 안에 들어가 아내와 바람의 통화를 하며 슬퍼하고 있다.
오츠치 로이터 연합뉴스
사사키 가즈요시(67)는 10년 전 세상을 떠난 아내 미와코의 핸드폰 번호를 조심조심 눌렀다. 그는 얼마나 많은 날 아내의 행적을 찾기 위해 헤맸는지 설명했다. 대피센터와 시신안치소들을 샅샅이 뒤졌다. 밤에 집에 돌아오면 쓰레기들로 엉망이었다. “모든 게 한 순간 일어났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 벌써 훌쩍이기 시작했다. “내가 있던 곳을 알리는 메시지를 당신에게 보냈는데 보지 않았더군. 집에 돌아와 하늘을 올려다보니 수천 개의 별이 내려다보고 있었어. 마치 보석함을 보는 것 같았지. 난 울고 또 울었어. 그때 쯤에야 난 수많은 이들이 스러졌다는 것을 알았어.” 이때 목숨을 잃은 사람은 2만명 가까이 된다.

오가와 사치코(76)는 44년 동안 부부의 연을 쌓고 속절없이 먼저 떠난 남편 도이치로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동안 무얼하고 지냈지부터 남편에게 물었다. “외로워요.” 결국 목소리가 갈라지고 말았다.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남편에게 가족들을 지켜봐달라고 부탁했다. “이제 끊어요. 나도 곧 갈게요.”

오가와는 남편이 저쪽에서 말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느끼니 조금 낫더라”고도 했다. 그녀는 친구들로부터 언덕 정원에 이런 전화가 있다는 얘기를 들어 알게 됐다며 가끔은 두 손자도 데려와 할아버지와 얘기를 나누게 한다고 했다.

그의 손자 다이나(12)는 “할아버지, 벌써 10년이 됐네요. 이제 곧 중학교 들어갈 거에요”라고 자랑했다. 할머니와 두 손자 모두 부스 안에 들어간 채였다. “이번에는 새 바이러스 때문에 또 많은 사람들이 죽고 있어요. 우리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있는 이유죠. 하지만 우리 모두 잘 지내고 있어요.”
남편 도이치로가 그리울 때면 두 손자와 찾는 오가와 사치코가 공중전화 부스 옆에서 남편 영정을 든 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오츠치 로이터 연합뉴스
남편 도이치로가 그리울 때면 두 손자와 찾는 오가와 사치코가 공중전화 부스 옆에서 남편 영정을 든 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오츠치 로이터 연합뉴스
도쿄에서 북동쪽으로 500㎞ 떨어진 이 마을의 공중전화 부스를 만든 이는 정원 주인 사사키 이타루(76)다. 그는 동일본 대지진 몇달 전 암으로 사촌을 잃은 아픔을 겪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작별 인사를 건네지도 못했다. 더 이상 얘기를 나눌 기회가 없을 것이란 점을 알았다면 많은 가족들이 무슨 말이라도 건넬 걸 그랬다고 후회하곤 한다”고 ‘바람의 전화’를 만든 이유를 설명했다.

이제는 공중전화 부스의 존재가 많이 알려져 일본 전역에서 찾아온다. 쓰나미 생존자들만 아니라 질병과 극단적 선택으로 가족과 친척을 잃은 사람들까지 찾는다. 같은 제목의 화로도 제작될 예정이라고 로이터 통신은 5일 전했다. 몇달 전 사사키에게는 영국과 폴란드에도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전화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제의가 왔다고 했다.

사사키는 “참사처럼 팬데믹도 갑작스럽게 찾아왔고 죽음이 갑작스럽게 닥치면 가족들이 경험하는 트라우마는 한층 길어지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사사키 가즈요시는 아내 미와코를 중학교 때 처음 만나 사랑한다고 고백했다가 퇴짜를 맞고 10년 뒤 다시 사귀자고 해 첫 데이트를 했다고 했다. 그 뒤 결혼해 네 자녀를 뒀다.

그는 최근에 임시 주택을 나와 막내아들이 지은 새 집으로 이사해 손주들과 지내고 있다고 아내에게 전했다. 전화를 끊기 전 최근 체중이 빠졌더라고 근황을 전하기도 했다. “내 몸은 내가 챙겨야지. 약속할게. 우리가 만난 것에 감사하고 있어. 고마워. 우리는 할 수 있는 일을 다했어. 응 빨리 말해봐.” 밖에는 강한 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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