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기후 정의/임병선 논설위원

[씨줄날줄] 기후 정의/임병선 논설위원

임병선 기자
입력 2022-08-30 20:28
업데이트 2022-08-31 04:29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파키스탄이 성서에나 나올 법한 홍수에 신음하고 있다. 두 달 동안 폭우가 이어진 데다 히말라야의 만년설과 빙하가 빠른 속도로 녹는 바람에 1100명 넘는 사람이 숨졌고 주택과 작물, 가축들이 떠내려갔다. 한 장관은 국토의 3분의1이 침수됐다고 개탄했다.

파키스탄은 세계 인구의 14%를 차지하는 46개 최빈개도국에 속한다. 이들 나라가 지구 전체의 이산화탄소 배출에 책임을 져야 할 몫은 1%가 채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기후재앙의 피해를 파키스탄처럼 가난한 나라가 온통 뒤집어쓰고 있다. 기후변화가 지구촌 차원의 재앙이긴 하지만 탄소 배출 등을 책임져야 할 선진국은 쏙 빠져나가고, 가난한 나라가 막대한 인적ㆍ물적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실정이다. ‘기후 부(不)정의’라 할 만하다.

파키스탄 정부 당국자는 “환경을 무책임하게 파괴하고 훼손한 다른 나라의 행위 때문에 파키스탄이 불공정한 결과를 감내하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2015년 페루의 한 농민은 안데스산맥의 빙하가 녹아 홍수 피해를 입었다며 독일 에너지기업 아르베에(RWE)그룹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언뜻 얼토당토않다고 여길 수 있는 소송이지만 획기적이다. 파키스탄 정부도 이 재판 결과를 참고해 비슷한 사법절차를 밟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한 나라 안에서도 기후재앙은 차별적으로 전개된다. 파키스탄만 해도 상대적으로 덜 개발되고 기반시설이 미흡한 남서부 발루치스탄주와 남동부 신드주에 홍수 피해가 집중됐다.

이달 초 우리의 중부 집중호우 피해 현황을 돌아봐도 노인, 여성, 이주자 등이 훨씬 재난 위험에 취약하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수도권에 에너지 수요가 집중되는데 수도권이 아닌 곳에 석탄 발전소와 쓰레기 처리 시설이 몰려 있는 문제도 기후 부정의로 간주될 수 있겠다. 우리네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에 견줘 누린 것은 많았지만 책임지는 대목은 상대적으로 적었고, 미래 세대에 책임을 떠넘긴다는 성찰도 제기될 수 있다.

분명히 했으면 하는 것은 기후재앙의 책임을 규명한다는 이유로 지구촌 차원의 하나 된 대응에 균열이 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임병선 논설위원
2022-08-31 27면
많이 본 뉴스
종부세 완화, 당신의 생각은?
정치권을 중심으로 종합부동산세 완화와 관련한 논쟁이 뜨겁습니다. 1가구 1주택·실거주자에 대한 종부세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종부세 완화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완화해야 한다
완화할 필요가 없다
모르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