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금강산 떠난 금강인가목 ‘100년 여행’… 영국서 살아남았다[계절실종: 식물은 답을 알고 있다]

[단독] 금강산 떠난 금강인가목 ‘100년 여행’… 영국서 살아남았다[계절실종: 식물은 답을 알고 있다]

이은주 기자
입력 2024-11-07 18:14
수정 2024-11-08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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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전 세계 ‘식물 구조’ 프로젝트

美 윌슨, 금강인가목 수집해 증식
英 에든버러 왕립식물원에 분양
국경 초월해 멸종 위기 식물 보존
왕립식물원, 홍수 방지 정원 조성
수분량 조절 등 과학적 연구 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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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미국의 윌슨 원정대가 금강산에서 채집해 간 우리나라 금강인가목이 영국에서 강인한 생명력을 이어 가고 있다. 미국 아널드수목원의 윌슨 원정대가 함경북도 무산군에서 찍은 사진. 한반도 전 지역을 탐사한 원정대는 금강산에서 금강인가목을 채집했다.  아널드수목원 제공
1917년 미국의 윌슨 원정대가 금강산에서 채집해 간 우리나라 금강인가목이 영국에서 강인한 생명력을 이어 가고 있다. 미국 아널드수목원의 윌슨 원정대가 함경북도 무산군에서 찍은 사진. 한반도 전 지역을 탐사한 원정대는 금강산에서 금강인가목을 채집했다.
아널드수목원 제공


금강인가목은 6~7월에 흰색 꽃을 피워 내는 키 작은 나무다. 금강산 바위틈에서 자라는데 30~70㎝ 관목이 아래로 처진 모습이 국수처럼 보인다고 해서 금강국수나무라고도 부른다. 전 세계적으로 근연종이 없는 단일종이어서 식물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북한도 금강인가목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호한다. 그러나 분단 이후 우리가 북녘에서 자라고 있는 이 꽃을 볼 방법은 마땅치 않다. 대신 유라시아 건너편인 영국 에든버러에 이 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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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으로 간 금강인가목은 영국 에든버러 왕립식물원에 분양됐다. 그리고 2012년 에든버러 왕립식물원이 한국 국립수목원에 금강인가목 묘목을 전달했다.  에든버러 왕립식물원 제공
미국으로 간 금강인가목은 영국 에든버러 왕립식물원에 분양됐다. 그리고 2012년 에든버러 왕립식물원이 한국 국립수목원에 금강인가목 묘목을 전달했다.
에든버러 왕립식물원 제공


지난 9월 방문한 영국 에든버러 왕립식물원. 25㏊에 이르는 넓은 식물원 가운데 자연과 어우러지는 한국 정원을 닮은 모습으로 조성된 바위 정원에서 금강인가목을 만났다. 구한 말 미국 보스턴으로 갔다가 다시 영국 에든버러에 옮겨진 금강인가목은 한 세기가 지난 지금도 과거 사진 속 모습과 꼭 닮은 모습으로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에든버러 왕립식물원 원예 담당 매니저인 케이트 휴가 금강인가목의 키에 맞춰 쪼그려 앉아 주변 흙을 정돈하며 “바위틈에서 자라는 금강인가목의 생장 환경에 맞춰 바위가든으로 최근 옮겨 심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식물원에 149종, 약 1000개가 넘는 한국 식물들이 있다”면서 “한국 침엽수들이 아기자기하며 열매도 잘 맺고 예뻐서 인기를 끈다”고 덧붙였다.

금강인가목이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거푸 건너게 된 사연의 시작은 19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 아널드수목원의 식물 채집가 어니스트 윌슨이 금강산에서 금강인가목을 수집했다. 하버드대 부설 아널드수목원에서 증식한 금강인가목을 1924년 에든버러 왕립식물원에 분양했다. 이후 미국에 있던 금강인가목 개체는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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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여름 에든버러 왕립식물원에서 금강인가목은 화려한 꽃을 활짝 피워 냈다.  에든버러 왕립식물원 제공
2019년 여름 에든버러 왕립식물원에서 금강인가목은 화려한 꽃을 활짝 피워 냈다.
에든버러 왕립식물원 제공


에든버러 왕립식물원에서 증식한 금강인가목은 2012년 한국 땅을 밟았다. ‘95년 만의 귀환’이라는 환영 속에 돌아와 경기도 포천 국립수목원에서 꽃을 피우는 데 성공했지만 이후 아쉽게도 고사했다. 그래서 북한을 제외하고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금강인가목을 볼 수 있는 곳으로는 에든버러 왕립식물원만 남았다. 제국주의 시절 한반도를 떠난 식물을 외국이 보호한다는 점에서 ‘씁쓸한 다행’인 면도 있다.

기후 위기로 인해 한반도의 계절이 실종되고 생물 다양성이 위협당하면서 식물 보전은 국경을 초월해 모든 국가들이 공조해야 하는 글로벌 이슈로 떠올랐다. 사라져 가는 꽃과 나무를 지키기 위한 전 지구적 공조가 태동하고 있는 지금 에든버러 왕립식물원은 ‘전 세계의 식물 보전 병원’으로 각광받고 있다. 이를테면 1970년대 홍콩 카두리 실험농장은 홍콩의 야생에서 단 한 그루 남은 희귀 식물인 삼지구엽초를 에든버러 왕립식물원으로 보냈다. 이후 홍콩에선 삼지구엽초가 사라졌는데, 증식에 성공한 에든버러 왕립식물원이 2020년 국제 침엽수 보존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삼지구엽초 묘목 40개를 홍콩으로 전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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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취재진이 방문한 에든버러 왕립식물원의 바위 정원에서 금강인가목이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모습.  에든버러 이은주 기자
지난 9월 취재진이 방문한 에든버러 왕립식물원의 바위 정원에서 금강인가목이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모습.
에든버러 이은주 기자


올해 유럽이 이상저온 현상을 겪는 와중에 방문하긴 했지만 에든버러의 9월은 한국의 초겨울 날씨처럼 서늘했다. 쌀쌀한 에든버러에서 아열대 지역인 홍콩의 나무를 살린 비법을 궁금해하자 이 식물원의 윌리엄 힌치클리프 박사는 “야생의 상태를 최대한 재현하고 수분량을 잘 조절해 준다”고 설명했다. 답은 물 조절에 있다는 것인데, 간단한 대답 뒤엔 매우 치밀한 과학적 노력이 숨어 있음을 이 식물원의 홍수 방지 정원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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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든버러 왕립식물원은 도심의 국지성 폭우에 따른 침수에 대비해 정원의 식물들을 ‘녹색 전사’로 활용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사진은 연구 장소인 홍수 방지 정원 전경. 에든버러 이은주 기자
에든버러 왕립식물원은 도심의 국지성 폭우에 따른 침수에 대비해 정원의 식물들을 ‘녹색 전사’로 활용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사진은 연구 장소인 홍수 방지 정원 전경.
에든버러 이은주 기자


홍수 방지 정원은 국지성 폭우가 내릴 때 최대한 많은 물을 정원의 흙 안에 가둬 둘 수 있도록 뿌리 형태가 잡힌 식물을 집중 배치한 정원이다. 2021년 7월 관광지로 유명한 에든버러성이 침수될 정도로 에든버러에도 비가 많이 왔는데 이에 대한 해법으로 홍수 방지 정원 연구를 활성화했다. 에든버러 왕립식물원에선 뿌리와 흙에 단시간 동안 물을 많이 저장하는 정원식물 품종을 연구하는 한편 대규모 정원 식재를 한 뒤 파이프로 대량의 물을 흘려 보냈을 때 물이 어떤 흐름을 보이는지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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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지성 폭우로 인한 침수는 에든버러뿐 아니라 서울에서도 근래 흔해진 재난이다. 한국에서는 주로 대심도 빗물 터널 등 수로 인프라 구축을 논의하는 데 비해 에든버러는 정원식물을 활용한 해법을 모색하는 모습이 대비된다. 왕립식물원 관계자는 “국지성 침수에 강한 식물을 심는 것은 집의 정원을 잘 가꾸는 사적인 행위인 동시에 마을의 침수를 방지하는 공적인 공헌”이라면서 “다양한 식물을 적합하게 식재하는 일상의 일 또한 기후 위기에 대비하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2024-11-08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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