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 대선후보 홍준표,‘모래시계 검사’서 우파 ‘스트롱맨’으로

한국당 대선후보 홍준표,‘모래시계 검사’서 우파 ‘스트롱맨’으로

입력 2017-03-31 15:41
업데이트 2017-03-31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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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팠던 소년 시절…‘슬롯머신’ 수사로 명성, 드라마 주인공 모델

자유한국당 대선후보로 31일 선출된 홍준표(63) 경상남도지사는 검사 출신 정치인이다.

홍준표 후보는 어린 시절이 불우했다고 회고했다. 의사에서 군인으로, 다시 검사로 진로를 바꾼 이유도 가난 때문이었다고 한다.

검사 시절엔 권력 비리를 파헤친 ‘슬롯머신 사건’ 수사로 이름을 떨쳤다. 인기 드라마 ‘모래시계’ 주인공의 모델도 됐다. 그러나 검사 생활이 오래가진 못했다.

그는 김영삼(YS) 대통령의 눈에 띄어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4선 의원을 지냈고, 집권여당 대표 자리에 올랐다. 이후 경남지사에 두 차례 당선됐다.

‘성완종 리스트’ 의혹에 정치적 위기를 맞았지만, 항소심 무죄 판결로 사실상 혐의를 벗었다. 이후 사상 최악의 위기에 놓인 한국당의 유력 대선주자로 떠올랐다.

홍 후보는 강한 개성 탓에 “통제가 안 된다”는 평가가 따라다녔다. 거친 발언으로 여러 차례 ‘막말 논란’을 빚었다.

자신을 ‘스트롱맨(strong man·철권통치자, 독재자)’으로 표현하며 좌파 집권을 막겠다고 나섰지만, 이번 대선은 ‘좌파에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스스로 인정했다.

◇도시락 못 싸 수돗물로 배 채웠다는 소년시절 = 홍 후보의 양친은 무식했고, 가난했다. 부친은 학교에 다니지 않은 무학(無學), 모친은 글자도 모르는 문맹(文盲)이었다고 말했다.

7세 때 가세가 기울자 홍 후보 가족은 고향인 경남 창녕을 떠나 대구로 이사했다. 손수레에 세간을 싣고 이틀 동안 걸었다.

월세가 싼 곳으로 옮겨 다니느라 초등학생 때 5차례 전학했다. 도시락을 싸지 못해 수돗물로 허기를 달랜 때가 많았다. 장마에 낙동강이 범람, 강 옆에 일구던 땅콩밭과 집이 물에 잠기기도 했다.

“고리 사채로 머리채가 잡혀 끌려다니던 어머니”를 봤다고 기억하는 장소는 지난 18일 대선 출마를 선언한 대구 서문시장이다.

직물공장에 취직한 작은누나의 월세방에 얹혀 지낸 중학생 시절을 보냈다. 밤 10시 전 무조건 소등하라는 집주인의 눈을 피해 이불 속에서 공부했다.

그는 의사가 되려 했지만, 돈이 덜 드는 육군사관학교 시험에 합격했다. 부친이 누명을 쓴 사건을 목격하고 검사로 진로를 바꿨다. 빚을 내 마련한 등록금을 들고 무작정 상경했다.

◇‘모래시계 검사’로 명성…검찰 조직에서 배척 = 홍 후보는 전북 부안에서 방위 복무를 마치고 1982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울산 조선소 바닷가에서 일당 800원을 받고 야간 경비원으로 일하던 부친이 합격 소식을 듣지 못하고 암으로 별세한 뒤였다.

검사가 된 그는 자신의 인생을 바꾼 사건을 1993년 서울중앙지검에서 맡았다. 슬롯머신 사건이다.

당시 ‘6공화국 황태자’로 불렸던 박철언 의원을 비롯해 고검장 등 검찰 간부들과 경찰청장, 병무청장까지 줄줄이 구속됐다. 조직폭력배도 등장한 이 사건은 드라마 ‘모래시계’로 제작됐다. 드라마 속 강우석 검사의 모델은 홍 후보였다.

검찰 조직이 뿌리째 흔들렸다. 조직의 ‘이단아’ 취급을 받던 그는 버티지 못하고 사직했다. 변호사로 개업한 홍 후보는 YS의 연락을 받았다.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의 ‘개혁공천’ 사례로 초선 의원이 됐다.

그는 “광주지검 강력부 때 잡아넣었던 깡패들이 출소해서 검사 그만둔 나와 가족을 슬렁슬렁 겁주더라”며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가족 보호를 위해 정치판에 들어왔다”고 털어놨다.

◇4선 의원, 당 대표, 도지사 지냈지만…늘 ‘변방’ 정치인 = 홍 후보는 제18대 총선까지 서울에서 내리 4차례 당선됐다. 2011년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예상을 깨고 당 대표에 선출됐다.

그는 계파가 없었다. 스스로 “친이(친이명박)도 친박(친박근혜)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자신이 계파 정치를 혐오한 측면도 있었지만, 계파에서도 그를 부담스러워했다.

계파가 없으니 혼자였고, 정치적 입지가 튼튼하지 못했다. ‘디도스 사태’와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의 책임론에 휩싸여 5개월 만에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그 자리는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몫이 됐다.

2009년 펴낸 자서전 제목은 ‘변방’이다. 늘 ‘변방의 검사’였고, ‘변방의 정치인’이었다는 의미다. 길들이기 쉬운 성격이 아닌 탓이다. 그러다 보니 견제를 받았다. ‘성완종 리스트’에 친박계 핵심 인사들과 함께 거명된 것도 박근혜 정권의 견제가 작용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성완종 리스트 의혹에 연루돼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을 때만 해도 “홍준표는 끝났다”는 게 정치권의 평가였다. 그는 “검사 시절 남을 처벌하며 저지른 업보”라고 고개를 떨궜다.

그러나 지난달 2심에서 무죄로 반전됐다. 법률심인 3심에서 무죄 판결이 뒤집힐 가능성은 작다. 자신의 무죄 판결과 박근혜 정권의 몰락이 시기적으로 공교롭게 일치한다고 홍 후보는 여긴다.

◇거침없는 발언에 ‘막말 정치인’ 비판…역전 드라마 쓸까 = 홍 후보에 붙는 수식어는 ‘막말’이다. 실제로 그의 표현은 거침없다. 정치인은 말로 먹고사는 직업이라 말을 많이 한다. 거친 말이 그의 입에서 쏟아졌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해 “뇌물 먹고 자살한 사람”이라고 한 최근 사례를 비롯해 예전에도 “이화여대 계집애들 싫어한다”고 하거나 야당 도의원을 ‘쓰레기’로 비유해 구설에 휘말렸다. 자신은 숨김없이 솔직하게 말할 뿐이라고 항변한다.

막말보다 그를 어렵게 만들 요인은 이번 대선의 구도다. 박 전 대통령 탄핵과 구속으로 어느 때보다 ‘정권교체’의 열망이 높은 시기다. 자신은 성완종 리스트의 위기를 벗어났지만, 후보로 나선 당은 대선 참패의 위기에 놓여 있다.

실제로 각종 여론조사에서 홍 후보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주자들의 지지율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뛰어야 하는 자신에게도 가장 힘든 선거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이번 선거를 좌우의 대결 구도로 보면서 ‘우파 스트롱맨’을 자처했다. 강력한 리더십과 추진력으로 국정을 장악하겠다는 의지인 셈이다. 과연 그의 바람대로 얼마나 ‘강력한 동남풍’이 불어줄지 주목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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