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컬 인사이드] 우울한 엄마, 그대로 두면 아기도 불행해요

[메디컬 인사이드] 우울한 엄마, 그대로 두면 아기도 불행해요

정현용 기자
정현용 기자
입력 2016-03-27 17:38
업데이트 2016-03-28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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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낳고 얻은 마음병 산후우울증…산모의 85% 산후우울감 호소

에스트로겐 수치 떨어져 발병
심하면 아기에게 극단적 행동


지난달 3일 대구에 사는 A(26·여)씨가 생후 5개월 된 아들을 3층 높이의 집에서 던져 숨지게 한 충격적인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아기가 울고 있다는 주민 신고로 119 구급대가 급히 병원으로 후송했지만 갓난아기는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서울에 거주하는 B(27·여)씨는 한 살배기 아이를 학대하는 자신의 모습을 참다못해 최근 집 인근 병원을 찾았습니다. 그는 의사에게 “잠자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게 느껴지다가도 어느 순간 돌변해 그 조그만 아이에게 손찌검을 하고 있는 모습이 소름끼쳐 병원을 찾았다”고 말하곤 눈물을 쏟았습니다. 아이를 때리고 학대하는 자신의 모습에 환멸을 느꼈지만 어느새 행동은 습관처럼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랑스러운 아기에게 극단적인 행동을 한 두 사람에게는 뚜렷한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중증의 ‘산후우울증’을 앓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행동을 제어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참혹한 사건을 접한 이들은 하나같이 비난을 퍼붓습니다. 엄마가 어떻게 갓난아기를 학대할 수 있을까. “기본적인 인성이 잘못됐다”고 돌팔매를 던집니다. 한편으로는 다른 일부 여성도 “나쁜 마음을 먹었던 경험이 있다”고 토로합니다. 왜 그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멈추지 못했을까요. 27일 여성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산후우울증에 대해 전문가 조언을 구했습니다.

●年 4만~8만명 산모 산후우울증 경험

서호석 강남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거의 모든 산모가 산후우울감을 호소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대한의학회 자료에 따르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산모의 85%가 산후우울감(베이비 블루)을 느낀다고 합니다.

우울감, 불안, 피로감, 식욕저하, 짜증·죄책감·무가치함 등 심리적 변화, 집중력 저하 등의 증상이 출산 후 대략 4주 전후로 나타납니다. 산후우울감은 질병이 아닙니다. 산후우울증과 분명히 구분해야 합니다. 여기서 기간이 중요합니다. 산후우울감은 3~5일째 증상이 가장 심해지지만 2주 정도면 저절로 사라집니다.

●출산 후 1년까지 이어지면 질병 의심

하지만 이 기간을 넘어 길게는 1년까지 이어지면 질병을 의심해야 합니다. 서 교수는 “산후우울감과 산후우울증의 차이는 감기와 폐렴으로 대비해 보면 딱 맞아떨어진다”며 “감기는 저절로 낫지만 폐렴은 방치하면 사망할 수 있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전체 산모의 10~20%는 산후우울증의 단계로 간다고 합니다. 지난해 출생아 수가 43만 8700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한 해 약 4만~8만명의 산모가 산후우울증으로 고통받는다는 의미입니다.

우울감이나 우울증은 임신으로 인한 호르몬 불균형이 첫 번째 원인입니다. 여성 누구나 겪을 수 있고, 누가 경험할지 알 수 없습니다. 산모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어려움을 호소합니다. 신체의 변화 때문이지 결코 엄마의 잘못이 아닙니다. 서 교수는 “난소에서 정상적으로 생성되는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이 임신 후에는 태반에서도 생성되면서 수치가 몇백 배로 상승한다”며 “하지만 출산 직후 태반을 떼어내면서 호르몬 수치가 급격히 떨어지고 이것은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의 감소로 연결돼 우울증을 유발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김선미 중앙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도 “에스트로겐은 세로토닌 시스템을 활성화해 항우울 작용을 하는데 출산 후 여성호르몬 변화가 우울증 발병에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습니다.

●남편, 산모와 대화하고 공감해 줘야

결혼, 임신, 출산은 인생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여성에게는 큰 스트레스로 작용합니다. 그래서 출산 전후로 콩팥 부신피질에서 나오는 스트레스 대응 호르몬 ‘코티졸’의 분비량이 늘었다 줄어드는 급격한 변화도 경험합니다. 여기에 남편이나 시댁·친정과의 불화, 경제적 어려움, 생활환경의 변화 등이 겹치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집니다. 그래서 남편의 역할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합니다.

김 교수는 “산후우울증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가족, 그중에서도 남편이기 때문에 산모가 대화에 참여하도록 유도하고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고 공감하고 격려해 줘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서 교수는 “직장 여성이 많이 늘었고 훌륭한 엄마, 훌륭한 아내만 꿈꾸는 그런 세상은 이제 아니지 않으냐”며 “그런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엄마가 되면 압박감이 클 것이기 때문에 남편이 먼저 나서서 육아에 도움을 주고 부인에게 애정을 쏟는 환경적 변화를 이끌어 줘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여성은 생리와 임신, 출산 등을 통해 끊임없이 호르몬 변화를 겪습니다. 스트레스에도 취약하기 때문에 우울증에 쉽게 노출됩니다. 60만명이 넘는 한 해 우울증 진료환자 가운데 70%가 여성입니다. 그렇지만 산후우울증으로 진료받는 환자는 많지 않습니다. 대략 실제 환자의 1% 정도만 치료를 받는다고 합니다. 산후우울증이 심해지면 피로감을 호소하며 아이를 방치하게 됩니다. 증세가 심해지면 아이를 ‘인생의 짐’이라고 여겨 나쁜 상상을 하는 상황에까지 이를 수 있습니다.

●정신병 단계 이르면 아기 해치기도

더 위험한 상황은 ‘산후정신병’ 단계입니다. 전체 산모의 0.1~0.2%는 아기를 해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을 위험이 높은 단계로 갑니다. 아기를 해치지 않을까 하는 강박적 사고와 심하면 아기가 죽었거나 불구가 아닐까 하는 망상, 출산 자체를 부인하는 행동, 환각, 성도착 행동을 보입니다. 서 교수는 “무엇보다 스스로 모든 것을 감내하려는 행동이 문제”라며 “중압감에서 벗어나 주변에 ‘헬프미’를 외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습니다. 이어 “산후우울증은 치료하지 않으면 30~50%의 환자에서 재발이 반복되는데 심한 경우에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며 “상당수 여성 우울증 환자가 출산 시기에 치료를 받지 못하고 방치돼 만성화된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습니다.

선진국들은 이런 점을 감안해 이미 오래전부터 대책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미국 일부 주는 출산 시 산후우울증 검사를 의무화했고, 영국에서는 출산 후 1년간 우울증 치료비를 전액 지원하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도 뒤늦게 지난달 산부인과와 소아과에서도 산후우울증 검사를 할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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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절한 영양 섭취·햇볕 쬐기로 예방

치료에 대한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합니다. 방치해 산후정신병이 되면 오히려 입원을 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초기에 치료하면 비교적 완치 가능성이 높습니다. 수유 기간만 피하면 됩니다. 김 교수는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3주 정도 지나면 눈에 띄게 증세가 호전돼 이르면 3개월 정도면 치료가 끝난다”며 “산후우울증은 비교적 치료가 잘 되는 병”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치료 과정에는 가족도 함께 참여하는 것이 좋습니다. 남편 등 가족의 지지가 중요하기 때문에 면담에 동참하고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어린 아기를 돌보다 보면 한동안 집 밖을 나서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적절한 영양 섭취와 휴식만큼 햇볕을 쬐는 행동이 우울증 발병을 억제하는 효과적인 예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서 교수는 “특히 오전에 햇볕을 쬐는 것이 도움이 많이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김 교수는 “산모 또한 엄마이기 이전에 한 사람임을 기억하고 간단한 취미 생활과 시간을 갖는 것이 출산 후 급격한 변화에 대처하고 스트레스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며 “심각성을 고려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상담해 정확한 평가를 받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사진=pixabay
2016-03-28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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