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20%가 노인… 복지 대상 아닌 ‘노동 인력’으로 접근해야”[최광숙의 Inside]

“국민 20%가 노인… 복지 대상 아닌 ‘노동 인력’으로 접근해야”[최광숙의 Inside]

최광숙 기자
최광숙 기자
입력 2025-02-11 23:52
수정 2025-02-12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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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명룡 대한은퇴자협회 대표

23년째 ‘시니어 운동’ 선봉에 서다

뉴욕서 한인은퇴자협회 결성 경험
美 국적까지 포기하고 선산 팔아
사재 수십억 들여 은퇴자들 도와
주택연금제·공공일자리 등 결실
2차 베이비부머는 ‘파워 시니어’

학력·전문성 높아 정년연장 고려
노인연령 70세, 점진적 상향해야
청년일자리처럼 고용부서 전담을
민간 주도 일자리 창출만이 해답
초고령사회, 노인 인력은 국가자산

70% 이상이 월급 27만원 ‘저임금’
표준생활 수준의 임금 지급해야
은퇴 후 ‘배벌사’로 노인 빈곤 해결
40여년 된 노인복지법 개정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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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세를 코앞에 둔 주명룡 대한은퇴자협회 대표는 열정적이었다. 두 시간이 넘는 인터뷰도 모자라 가방 가득 은퇴자협회 활동을 담은 자료까지 가져와 설명했다. 은퇴자협회는 미국 내 정치적 영향력이 가장 큰 3대 단체 중의 하나인 미국은퇴자협회(AARP)를 모델로 2002년 설립된 고령화 비정부기구(NGO)이다. 홍윤기 기자
80세를 코앞에 둔 주명룡 대한은퇴자협회 대표는 열정적이었다. 두 시간이 넘는 인터뷰도 모자라 가방 가득 은퇴자협회 활동을 담은 자료까지 가져와 설명했다. 은퇴자협회는 미국 내 정치적 영향력이 가장 큰 3대 단체 중의 하나인 미국은퇴자협회(AARP)를 모델로 2002년 설립된 고령화 비정부기구(NGO)이다.
홍윤기 기자


23년째 ‘시니어 운동’을 하고 있는 주명룡(79) 대한은퇴자협회(KARP) 대표. 주 대표를 만나기 전에는 미국에서 성공한 사업가로 뉴욕한인회장까지 지낸 그가 “왜 사서 고생할까” 싶었다. 하지만 주 대표가 미국 국적을 포기하고 선산까지 팔아 수십억원의 사재를 쏟아부으며 은퇴자들을 위해 벌인 활동의 결실을 확인하면 “그의 고생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주택연금제도, 연령차별금지법, 노인 공공 일자리 사업 등을 이끌어 낸 주역이 바로 그다. 최근 주 대표를 만나 국민 5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인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우리 사회가 가야 할 길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주 대표는 “인구 감소의 초고령사회에서 노년층 인력은 국가 자산이 될 수 있다”며 “노인 일자리를 창출해 이들을 국가 발전의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노인·청년 같이 일하면 생산성 높아져

-국민 20%가 노인이다. 노인을 대하는 사회적 인식이 변해야 할 것 같다.

“일할 사람은 줄고 노년층은 급증하는 초고령사회가 갈 길은 노년 인구 활용이다. 노년층을 사회 서비스 부문 일자리에 투입해 경제 영역의 일정 부분을 담당하게 하면서 표준생활비 수준의 임금을 지급해 생활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고령층은 복지 대상이 아닌 활용 가능한 인력이라는 시각의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 정부가 노인 정책을 다시 수립할 때다.”

-고령층 인력을 활용해야 하는 이유는.

“고령화는 노동인구 감소, 복지비 증가, 청년층 부담으로 이어진다. 노동인구 감소는 이민, 외국인 근로자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고령층의 수십 년간 경험과 노하우를 적극 활용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노인 노동력 활용 문제는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세계은행은 장수 시대를 ‘장수 경제 시대’(Longevity Economy)로 정의한다. 고령화 시대의 최대 고민은 노인 일자리라는 뜻이다. 정부 재정이 투입되는 ‘노인 공공 일자리’ 사업이 확대되고 있지만 노인 일자리의 70% 이상이 월급 27만원밖에 안 되는 저임금이다. 노인의 열악한 생활을 개선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용돈 수준이다. 민간 주도 일자리 확대가 필요하다. 노인 빈곤율을 낮추려면 민간 주도 일자리 창출이 사실상 유일한 대책이다.”

-기업이 선뜻 노인 채용에 나서지 않고 있는데.

“숙련된 노인을 저임금으로 활용하는 것은 기업에도 좋다. 기업이 다양한 연령대를 포용하면 생산성이 높아진다. 젊은 세대와 나이 든 세대가 함께 만들어 내는 시너지는 엄청난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진다. 젊은 세대는 빨리 달릴 수 있지만, 나이 든 세대는 지름길을 알고 있다. 재능에는 유효 기간이 없다.”

-하지만 청년 실업이 심각하다.

“노인 일자리는 요양보호사같이 청년층이 하려고 하지 않는 일자리다. 청년이 하려는 일은 나이 든 세대가 하지 못하고, 나이 든 세대가 하는 일을 청년 세대는 저임금 때문에 꺼린다. 일자리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일자리를 놓고 세대 간 갈등은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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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명룡 은퇴자협회 대표는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고령화는 노동인구 감소, 복지비 증가, 청년층 부담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며 “초고령사회을 맞아 노인 정책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명룡 은퇴자협회 대표는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고령화는 노동인구 감소, 복지비 증가, 청년층 부담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며 “초고령사회을 맞아 노인 정책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은퇴 후 ‘배우고 벌며 사는 법’ 중요

-은퇴하는 이들도 퇴직 후 대비를 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OECD 등에서는 ‘배우고 벌며 사는 것’을 의미하는 ‘LLEL’(living, learning and earning)을 강조한다. 노인 일자리 해답은 ‘배벌사’(배우고 벌어서 오래 사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고용노동부 산하 전국 40여개가 넘는 폴리텍대학이 있다. 노인을 재교육한 뒤 일자리에 투입한다면 나중에 등록금이 국고로 다시 환수되는 순기능이 일어난다. 궁극적으로는 기업을 끌어들여야 한다. 그러면 공적 연금과 기업 주도 일자리 보수를 합해 월 150만~200만원 정도의 생활임금 지급이 가능해 노인 빈곤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을 준다.”

-지난해부터 2차 베이비부머(1964 ~74년)의 법정 은퇴가 시작됐다.

“2차 베이비부머들은 건강하며 학력과 전문성이 높은 이른바 ‘파워 시니어’다. 이들의 노동시장 진입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으면 경제·사회적 손실로 이어질 것이다.”

-노인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해 정년 연장이 필요한데.

“우리는 인구 감소 및 생산 가능 인구 감소라는 두 가지 난제를 안고 있다. 제한된 인력 수급 상황에서 노년층 빈곤과 노동 인력 수급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정년 연장을 통해 건강한 노년층이 일자리에 오래 머물게 하는 것이다.”

-노인 연령을 상향하자는 의견이 많은데 입장은.

“노인 기준 연령을 올리되 점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기초연금 등 각종 사회제도가 65세 기준으로 맞춰져 있어 단번에 70세로 상향 조정하는 것은 부담이 된다.”

-정부가 노인 일자리 문제에 잘 대응하고 있다고 보나.

“노인 일자리를 복지 차원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보건복지부는 노인 일자리를 복지 시각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근본적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 한계가 있다. 우리도 두 부처를 합쳐야 한다. 부처 간 통합이 어렵다면 노인 일자리 업무를 고용부로 넘겨야 한다.”

현재 청년 일자리는 고용부가, 노인 일자리는 복지부가 담당한다. 일본은 복지부와 고용부가 합쳐진 후생노동성에서 일자리 문제를 통합적으로 처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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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명룡 은퇴자협회 대표의 최대 관심사는 노인 일자리 문제. 정부 재정이 투입되는 노인 공공일자리 확대도 중요하지만 기업이 주도적으로 노인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주명룡 은퇴자협회 대표의 최대 관심사는 노인 일자리 문제. 정부 재정이 투입되는 노인 공공일자리 확대도 중요하지만 기업이 주도적으로 노인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노인 일자리도 고용부가 담당해야

-공공 노인 일자리 아이디어를 냈다고 들었다.

“1960년대 린든 존슨 미국 대통령은 ‘원예·정원 가꾸기’ 프로젝트를 통해 노년 일자리를 만들었다.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노무현 정부 시절 고령사회대책 태스크포스(TF) 민간위원으로 활동할 때 공공 노인 일자리를 제안했다. 2004년 일자리 2만 4000여개로 시작했는데, 호응이 많았다. 올해에는 110만개로 확대됐다.”

-처음으로 연령차별금지법 제정에도 나섰다던데.

“2002년 은퇴자협회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연령차별금지 권고를 요청하자 담당자는 ‘나이 차별이 무슨 차별이냐’며 반려했다. 미국에서는 1960년대에 고용상 연령차별금지법이 제정됐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개념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협회가 7년간 싸워 2009년 ‘고령자고용촉진법’에 연령차별금지 조항이 들어갔다.”

-협회 활동 중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2007년 시행된 주택연금제도다. 2003년 미국의 역모기지 제도에 착안해 재정경제부에 제안서를 전달했는데, 아무 소식이 없더라. 2006년 주택금융공사에서 갑자기 연락이 와서 도와줬다. 그 후 6개월 만에 법안이 만들어졌다.”

-요즘 노년층의 노후 생활에 큰 도움이 되는 게 주택연금이라고 한다.

“주택연금 도입 당시 대다수 노인들은 ‘집 한 채 있는 것 자식 줘야지’ 하는 분위기였다. 법 시행 이튿날 어떤 며느리가 주택금융공사 앞에서 ‘시아버지가 집을 주겠다고 했는데 이 법 때문에 상속을 못 받게 됐다’며 항의하는 일도 있었다. 지금은 자식들이 아버지 손 잡고 와서 ‘주택연금으로 매달 연금 받으며 걱정 말고 편히 쓰라고 말한다’고 들었다. 자식의 부모 부양 부담이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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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은퇴자협회 주명룡(왼쪽에서 두 번째)대표와 서울시 동부여성발전센터 정은아 센터장이 지난해 말  서울시 동부여성발전센터에서 취업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식을 진행했다.
대한은퇴자협회 주명룡(왼쪽에서 두 번째)대표와 서울시 동부여성발전센터 정은아 센터장이 지난해 말 서울시 동부여성발전센터에서 취업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식을 진행했다.


●낡은 노인복지법 개정 필요

주 대표가 노인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설 수 있었던 데는 뉴욕한인회장으로서 미국 정가를 상대로 은퇴자 등 한인 권익 보호 활동을 한 경험이 바탕이 됐다.

-미국에서 성공했는데 귀국한 이유는.

“1997년 IMF 외환위기로 한국에 실직자가 넘쳐나고 준비 없는 은퇴에 가족까지 해체된다는 소식을 듣고 고국에 가서 뭔가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뉴욕에서 한인은퇴자협회를 결성했던 경험이 한국에서 KARP를 창설할 수 있는 바탕이 됐다.”

-올해 계획은.

“1981년 제정된 노인복지법을 달라진 사회 환경에 맞게 고치는 개정 운동을 벌이려고 한다. 협회를 이끌 후임자를 찾는 일도 과제다. 행사 때면 은퇴한 이들 ‘기 살리기 운동’의 하나로 제작한 ‘Hero Song’ 뮤직비디오를 튼다. 격동의 근현대사를 슬기롭게 이겨낸 중장노년층들이 희망을 잃지 말고 다시 한번 도약하자는 내용이다. 은퇴자들이 기죽지 말고 ‘우리는 모두 영웅’이라는 자부심으로 살아갔으면 한다.”

■주명룡 대표는

뉴욕 머시대(석사) 출신으로 대한항공 승무원으로 근무하다 미국 이민을 가서 뉴욕 맨해튼에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맥도날드 체인점(4개)을 운영하는 등 큰 부를 일궜다. 뉴욕한인회장을 지내며 한인사회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미국 이민자에게 주어지는 최고 영예의 상인 ‘엘리스 아일랜드(Ellis Island) 상’을 받았다. 귀국 후 사재를 털어 대한은퇴자협회를 창립해 노년층의 삶에 영향을 주고 있는 주택연금제도, 연령차별금지법, 노인 공공 일자리 사업의 도입을 이끌었다.
2025-02-12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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